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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스마트한 경제 이야기

내가 1600에 주식을 판 이유


시장에서 옷을 한 벌 사고 나오다가 다른 가게에서 꼭 같은 옷을 보았는데 더 싼 것을 발견했다. 이때 기분은 어떨까? 주식을 샀는데 값이 떨어졌을 때와 팔았는데 값이 오를 때 기분은 언제가 더 나쁠까? 합리성과 효율성을 전제로 구성되는 금융시장이지만, 놀랍게도 막상 정말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심리적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고 놀랄 때가 많다.

지난해 말 코스피가 900선을 뚫고 내려가고 미네르바가 500선까지 추락을 경고할 때, 필자는 약간의 오기가 나서 주식을 매입했다. 이런저런 칼럼과 특강에서 적정주가를 1,200~1,400이라고 주장했는바, 900대의 주가가 자존심에 견디기가 어려웠던 것일까? 그때 산 주식을 이번에 코스피가 1,600선을 돌파하자 모두 매도했다. 증권회사의 담당직원이 극구 말리면서, 외국인들의 적극적 국내 주식 매입이 나타나는 것을 보아 이제 대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고 주장해 잠시 망설이기는 했었다.

필자가 매도한 후 주가는 급상승하여 현재 칼럼을 쓰는 시점 현재 1,700을 전후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심사숙고하여 내린 매도 결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라리 그때 말리던 증권회사 직원의 말을 들었을 것을 하는 후회감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지금 필자는 당시 스스로의 판단이 과연 옳았던가를 다시 돌아보고 있다. 필자는 왜 주식을 팔았던 것일까?

주가를 결정하는 요인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면 기업의 미래이익, 할인율로서 시장금리, 그리고 미래 불확실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기업이익이 클수록, 금리가 낮을수록, 불확실성이 작을수록 주가는 상승한다.

이를 하나씩 살펴보자. 기업의 미래이익 측면에서 현재까지 분위기는 상당히 좋아 보인다. 치열한 치킨게임의 승자로 살아남은 우리나라 기업들의 실적이 상당히 양호하게 나타났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이번 상승장을 유동성 장세가 아닌 실적장세로 이미 넘어온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원화가치 하락(환율상승)으로 인한 우리나라 기업 수출상품의 가격인하 효과가 지대한 기여를 했음을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이제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 미만으로 내려 앉으려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은 이러한 원화절상의 부담을 이겨낼 만큼 강한가? 한편으로 유가 및 각종 원자재의 가격이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한 것 또한 기업에게는 원가부담이 되어 향후 이익을 떨어뜨릴 것이다.

시장금리 측면에서 살펴보자. 2007년에 시작된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공조한 양적완화(quantitative easiness) 정책의 효과로 인해 시장유동성은 그 어느 때 보다 풍부해진 상황이다. 시장금리의 하락은 미래이익을 현재가치로 환산하는 할인율을 하락시켜 주가상승을 이끌어냈다. 같은 논리이지만 달리 표현하면 사상유례(史上類例) 없이 낮아진 시장금리 덕에 위험금융상품인 주식의 상대적 매력이 더 커졌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전 세계가 지금 고민 중인 것은 출구전략의 시행시기이다. 지금 상태로 과잉유동성을 방치할 경우 인플레이션의 도래가 불가피하다. 그렇다고 적극적인 출구전략을 구사하자니 막상 경기가 제대로 살아났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다. 결국 대부분 정부들은 차일피일 미루면서 시장의 흐름을 예의 관측하는 중이다.

지금쯤 대부분 동의하는 것은 경기가 이 기조로 계속 좋아지고 인플레이션의 조짐이 조금이라도 나타나면 곧 바로 정책당국이 출구전략을 시행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한국은행 총재는 그러한 입장을 시장에 천명한 바 있다. 즉, 시장금리는 이제 내리기보다는 곧 상승할 것이다.

주가를 결정하는 마지막 요인은 불확실성이다. 코스피가 1,700선을 돌파하자 증권회사 애널리스트들은 낙관론자와 비관론자로 양분되기 시작했다. 낙관론자 중에는 코스피 2,200선을 이번 장세의 목표로 제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비관론자 중에는 이번 상승장에 조정다운 조정이 없었음을 들어 1,200~1,300선까지의 조정을 점치기도 한다. 시장의 불확실성이 다시 증폭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번 상승장을 이끌어 낸 원인을 혹자는 ‘신 3저(新三低)’라고 부른다. 금리, 유가, 원화가치의 세 가지가 모두 하락하면서 우리 경제에 훈풍이 불어왔다는 것이다. 1987~89년 당시 ‘3저 호황’과 비슷한 여건에 놓임을 빗댄 말이다. 그러나 이제 금리는 상승 발동을 걸고 있고 유가는 다시 배럴 당 70~80 달러로 오르고 있으며, 원화는 빠른 속도로 절상되면서 시장의 분위기는 냉각되기 시작할 것이다. 주식매도를 검토할 만한 것이다.

이상의 접근법은 펀더멘탈 접근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또 다른 방식으로 투자전략 접근법을 살펴보자. 이번 주식상승장에서 두드러진 현상은 외국인의 국내주식 대량 매입이다. 외국인들은 왜 이렇게 국내주식을 매입하는 것일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집중 매입하는 국내 대표적 기업들의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되고 있는 것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이번 금융위기를 맞아 나타난 ‘달러 캐리’ 현상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정부가 위기극복 과정에서 엄청나게 방출한 달러화는 미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불신과 맞물리면서 현재 커다란 가치절하 압력을 받고 있다. 최근 금값의 빠른 상승은 이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달러 가치 하락이 예상된다고 하면, 펀드매니저 입장에서는 현재의 달러 저금리를 이용해 달러를 차입하고 이를 해외자산에 투자하는 ‘달러 캐리’ 전략이 바람직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려들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들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국내기업 실적개선에 따른 주가상승과 더불어 원화가치 상승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달러 캐리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미국 또한 출구전략을 검토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고 원/달러 환율이 1,100원 대로 하락할 경우 외국인들의 달러 캐리는 점차 힘을 잃어갈 것이 자명하다.

필자가 좋아하는 주식시장 격언 중에 ‘무릎에서 사서 어깨에서 팔라’는 것이 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생선을 먹을 때 머리와 꼬리는 남겨 두어라’고도 한다. 주식을 가장 싼 가격에 매입해서 가장 비싼 가격에 매도하려는 무모한 욕심을 경계한 말이다. 필자가 매도한 가격대가 어깨였는지, 아니면 가슴팍 정도밖에 못 미친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밝혀질 것이다.

앞으로도 주가가 계속 상승한다면? 그때는 유명한 경제학자 케인즈조차 주식투자에서 망해서 알거지가 된 적이 있었다는 사실로 위안을 삼을밖에…

출처 : KDI 나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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