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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블루칩 경제정책 이야기

마이크로 크레딧 혁명, 소액대출의 현주소

지난해 12월 15일 미소금융 1호점이 경기도 수원에서 문을 열면서 국내 미소금융사업이 본격화되었다. 닻을 올린 지 1달 만에 전국의 미소금융 지점은 19곳까지 늘어났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시작된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서민경제 활성화대책 중 하나로 채택된 미소금융사업의 탄생과정과 의의, 이에 관련된 논란 등에 대해 살펴보자. 

 아름다운(美) 소(少)액대출
‘마이크로 크레딧’(microcredit)이란 제도권 금융을 이용하기 힘든 영세민의 자활을 돕기 위한 무담보ㆍ무보증 소액대출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에서 마이크로 크레딧의 필요성이 본격 제기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이다. 외환위기로 인해 직장을 잃고 저소득층으로 전락한 서민층이 급증하였지만 자활의지가 있어도 신용등급이 낮아 은행의 대출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2000년대 초반 신용카드 버블 붕괴로 제도권 금융기관들이 서민들에 대한 소액신용대출을 기피하면서 이들의 어려움은 더욱 가중되었다. 민간 주도로 설립된 ‘신나는 조합’과 ‘사회연대은행’이 각각 2000년과 2002년에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을 개시하면서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딧의 싹이 트기 시작했지만 저소득ㆍ저신용층의 금융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부족했다.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저소득ㆍ저신용층은 또 한번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에 정부는 금융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금융소외계층에게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에서 2008년 3월 휴면예금을 재원으로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을 수행하는 ‘소액서민금융재단(휴면예금관리재단)’을 출범시켰다. 지난해 9월 17일 ‘제31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기존의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을 대폭 확장하여 추진한다는 내용이 발표되었고, 새로운 사업의 이름은 ‘아름다운(美) 소(少)액대출’ 미소금융으로 정해졌다. 미소금융사업은 금융소외계층에게 창업ㆍ운영자금 등의 자활자금을 무담보ㆍ무보증으로 지원하는 것은 물론 경영컨설팅, 채무불이행자에 대한 부채상담과 채무조정, 취업상담 등의 서비스까지 제공한다.
향후 10년간 정부의 재정지원 없이 대기업 및 은행ㆍ증권사의 기부금과 휴면예금 출연금으로 약 2조2천억원의 기금을 조성할 계획이며 소액서민금융재단을 확대ㆍ개편한 ‘미소금융중앙재단’이 미소금융사업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 미소금융중앙재단은 지역별 미소금융수행법인(미소금융지점) 및 지부 설립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200~300개의 전국적인 미소금융 네트워크를 구축할 예정이다. 재계나 금융권 등도 개별적으로 미소금융재단을 설립한 후 중앙재단의 기금을 배분받아 자율적으로 미소금융사업을 수행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수원에 개소한 미소금융 1호점은 ‘삼성미소금융재단’의 미소금융지점이다. 1호점 개점 1달이 지난 현재 총 6,000명가량의 고객이 대출상담을 받았으며 기부금은 약 2,700억원 정도가 모아졌다. 


마이크로 크레딧 혁명
“가난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적선이 아니라 평등한 기회이다.”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방글라데시 은행가 무하마드 유누스(Muhammad Yunus)가 남긴 말이다. 마이크로 크레딧에 대한 아이디어는 『걸리버 여행기』의 저자 조나단 스위프트(Jonathan Swift)와 미국의 무정부주의자 라이샌더 스푸너(Lysander Spooner) 등에 의해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받으면서 확산된 것은 유누스가 설립한 그라민 은행(Grameen Bank)이 성공하면서부터이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시에서 태어난 유누스는 미국 밴더빌트 대학(Vanderbilt University)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치타공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였다. 1976년 고리대금업자에게 시달리는 대학 주변 마을주민 42명에게 자신의 주머닛돈 27달러를 빌려준 것을 계기로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에 뛰어들어 1983년에는 방글라데시 말로 ‘마을’을 뜻하는 ‘그라민’ 은행을 설립하게 되었다.
그라민 은행 고객의 대부분은 방글라데시에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이다. 그라민 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대출회수율은 한때 99% 가까이까지 이르렀고, 매년 그라민 은행 고객의 5%가량이 빈곤으로부터 벗어났다고 한다. 그라민 은행의 실적은 여러 사람들에게 기적처럼 받아들여졌고,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은 세계 각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을 맨 처음으로 시작한 ‘신나는 조합’도 그라민 은행의 한국지부로서 씨티은행의 지원 아래 설립된 것이다.

 

한국형 마이크로 크레딧은 미소(微笑) 지을 수 있을까?
방글라데시에서 마이크로 크레딧이 큰 성공을 거두기는 했지만 빈곤을 줄이는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다. 만약 대출에 사용되는 자금이 시장을 통해 조달된다면 빈곤을 줄이는 효과가 실제로 있는지에 대해서 크게 궁금해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은 아직까지 개인이나 기관의 기부금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인도, 필리핀 등지의 개발도상국에서 마이크로 크레딧의 수혜자를 무작위로 선정하여 수행한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1~2년 이내의 단기에는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평균소비에 큰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마이크로 크레딧 사업 성공의 핵심은 결국 대출된 자금이 생산적인 곳에 사용되느냐 하는 것이다. 마이크로 크레딧은 분명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업 초기비용의 장벽을 뛰어넘는데 도움을 준다. 사업이 번창하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소요되므로 단기에는 빈곤을 줄이는 효과가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더라도 장기에는 그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결론이다.
국내의 많은 학자들도 미소금융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모적 복지 차원이 아니라 생산적 복지 차원에서 사업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조언을 하고 있다. 소액신용대출로 지원할 수 있는 사업은 주로 영세자영업이지만 개발도상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영세자영업은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견해가 많다. 그러므로 미소금융사업에는 자금지원과 동시에 영세자영업의 낮은 생산성을 높이는 효율적인 경영컨설팅과 교육이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사업이 장기에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기부금 의존도를 줄이고 자체순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는 대기업들이 반기업 정서 해소 등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지만 기부에 의존하는 구조가 지속되기는 힘들다.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대출을 담당할 전문성 높은 자원봉사자를 다수 확보하는 것과 차입자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방지하는 것도 앞으로의 과제로 지적받고 있다. /출처 : K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