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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세계의 경제 이야기

튤립투기사건 - 버블경제를 알아보자 -

최근에 우리 중학생들은 세계지리를 배우면서 네덜란드의 상징은 튤립이라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튤립과 네덜란드는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요? 그전에 네덜란드와 네덜란드가 어떻게 금융선진국으로 발전하게 되었는지 살펴봅시다. 네덜란드는 17세기 동인도회사를 시작으로 천연자원이 적고 인구가 많지만, 1인당 국민 총생산이 3만 달러 이상으로 매우 높습니다. 라인 강의 하류라는 지리적 위치와 국민들의 근면함, 창의성이 농업과 무역에서 많은 경제 성장을 이뤄냈기 때문입니다. 무역 중에서 가공 무역(외국에서 원재료 또는 반제품을 수입하여 이를 국내에서 가공·제품화하여 수출하는 무역)과 중계 무역이 발달한 네덜란드 경제는 수출의 비중이 높아서, 국내 총생산의 50%~60%를 수출이 차지할 정도입니다. 기계, 섬유, 농산물, 화학 제품, 철 등을 많이 수출하며, 세계 최대인 로테르담 항구 때문에 유럽의 관문이라고 불립니다. 또한 경쟁력 있는 산업은 집중해서 발전시키고 그 외의 산업은 다른 나라에 개방하는 국가 정책을 펼쳐, 네덜란드에는 다국적 기업과 외국계 기업이 5천여 개나 들어와 있습니다. 세계 500대 기업으로 선정되는 하이네켄, 유니레버, 필립스 등의 네덜란드 기업들도 모두 다국적 기업입니다. 현재는 환경 보호에도 관심을 기울여, 전문적인 축산 분뇨 처리 회사를 세우고 농·축산 산업으로 배출되는 가축의 분뇨를 비료로 만들어 주변 국가에 수출하기도 합니다. 또 기업들은 보다 환경 친화적이고 효율적인 생산 공정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여, 그 기술 역시 수출하고 있습니다. 또한 델타 프로젝트를 통하여 댐과 방조제를 건설하는 대공사를 통하여 어떠한 물로 인한 재난은 다스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이렇게 경제성장을 이루는 네덜란드에서는 큰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바로 튤립투기사건인데, 이 현상은 왜 발생한 것일까요? 17세기 당시 네덜란드에는 동인도회사가 있었습니다. 이 동인도회사에 투자를 하여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투자해서 번 돈을 마음껏 쓰기 시작했었죠. 이러한 사람들은 금융투자를 통해 돈의 맛을 알게 되었고, 노동을 통해서 돈을 벌기 보다는 새로운 투자상품을 찾으려고 나섰습니다. 그때, 사람들의 눈에 띈 것은 튤립이었습니다. 튤립은 16세기에 들어온 수입품으로 귀족과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는데, 다양한 꽃의 색깔과 무늬에 따라 상품의 가치는 달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튤립에 투자를 한 것 일까요? 바로 튤립의 우연성 때문입니다. 튤립은 꽃이 활짝 필 때까지 무늬와 색깔을 아무도 예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사람들의 투기심리에 힘입어 튤립 뿌리의 가격은 하늘을 찌릅니다. 튤립 한 뿌리의 가격이 집 한 채의 가격으로 뛰어 올랐고, 평범한 노동자의 연봉의 몇 배에 해당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튤립의 가격이 하루에 두세 배씩 오르자 사람들은 집과 땅을 팔아 튤립을 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가격이 떨어져서 튤립의 많은 양을 팔게 되자 공포감에 빠진 시민들도 빠르게 튤립을 낮은 가격에 팔게 되면서 시민들은 이익을 보지 못한 채 투기사건이 끝난다. 그러면서 네덜란드의 경제는 하락하게 되었습니다. 이 튤립투기사건이 대표적인 버블현상라고 볼 수 있습니다.


버블경제란 내재가치에 비해 시장가격이 과대평가 됐다는 것으로, '과열(過熱)'이라는 용어가 쓰이기도 하며 일반적으로 '비이성적인 투기행위'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주식시장은 과열되고 대규모 은행자금이 부동산업계로 이동하는 한편, 여기에 가세한 사회 전반의 투기심리가 가세하여 주가와 지가를 큰 폭으로 상승시키면 실물경제에는 큰 변동이 없음에도 전반적 경기가 팽창하여 마치 경제가 전반적으로 거품만 부풀어 오른 양상을 띠게 됩니다. 이에 대한 대표적인 예로는 네덜란드의 튤립투기사건과 미국 캘리포니아의 인터넷투자열풍을 들 수 있겠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 튤립을 투기수단으로 생각했던 네델란드인들이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을까요? 현대에도 투기행위가 계속되는 것을 보면, 꼭 그렇지만는 않아 보이는군요. 이상으로 튤립파동을 통해 버블경제를 살펴보았습니다.지금까지 김현정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