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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세계의 경제 이야기

‘이자’가 없는 이슬람 금융 이야기

지난 10월30일. 세속주의형 이슬람 국가인 터키에 세계은행 산하 이슬람 금융을 개발·연구하는 사무소가 처음으로 신설됐습니다. 터키는 정교분리 국가이기에 이슬람 금융이 발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2012년부터 터키 정부는 이슬람 금융 육성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10월29일 영국에서 열린 ‘세계 이슬람 경제포럼’에 맞춰 영국 정부는 대규모 이슬람 채권 발행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 금융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 전 세계가 관심을 갖는 걸까요?





이슬람 금융의 기준, 샤리아 

이슬람 금융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샤리아(Sharī‛ah)’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샤리아는 이슬람교의 율법 체계로, 이슬람교의 성경이라 할 수 있는 ‘코란(Koran)’을 바탕으로 합니다. 


이슬람 금융에서는 오직 샤리아에 부합한 금융상품 및 서비스만 허용이 됩니다. 이를 위해 이슬람 금융기관은 이슬람 법학자로 구성된 샤리아위원회(Sharī‛ah board)를 설치하고 금융 거래의 적격 여부를 판별하는 샤리아 심사(Sharī‛ah screening)를 실시합니다.


샤리아의 어떤 내용 때문에 금융거래에 대한 위원회의 심사까지 필요한 걸까요? 이슬람 금융은 리바(Riba,이자), 가라르(Gharar,불명료성), 마이시르(Maisir,투기)를 금하기 때문입니다. 즉, 금융에서 가장 중요한 이자지급과 수취가 이슬람 금융에서는 금기시되는 일입니다. 이 때문에 이슬람 금융은 일반적인 금융과는 다른, 독특한 거래 방식을 취합니다.



◎ 무다라바(Mudarabah)

무다라바는 타인에게 운용을 위탁하는 것을 말합니다. 얼핏 보면 펀드투자 혹은 투자신탁과 비슷해 보입니다. 이 때문에 신탁거래의 기원이 이슬람 금융에서 유래됐다고 보는 설도 있습니다. 무다라바의 거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투자자는 운용자에게 자금을 제공하고, 운용자는 이를 운용해 얻은 이윤을 배당금의 형태로 투자자에게 전달합니다. 이 때 투자자가 얻은 배당금은 이자가 아닌 사업에 의한 성과가 됩니다. 투자 당시에 투자자가 투자 내용을 숙지하고 이윤 분배율을 미리 정함으로써 불명료성을 제거하므로 샤리아에 부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다바라는 예금에도 통용됩니다. 이때도 이자 요소와 불명료성을 배제하고자 고정이율을 적용하지 않고 예금자와 은행 간 이익분배율을 미리 정해놓는 식으로 샤리아에 부합토록 합니다.


◎ 무샤라카(Musharaka)

무샤라카는 자금을 필요로 하는 사업자에게 은행이 공동출자하는 형태의 금융 거래입니다. 무다라바가 펀드투자나 투자신탁과 유사하다면, 무샤라카는 벤처캐피털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업자와 은행 간 무샤라카가 체결되면 은행은 출자자 중 한 명이 돼 그 사업에 대한 부분적인 소유권을 갖게 되고 사업의 경영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샤리아에 따라 이윤의 분배율이 체결 시점에 미리 정해지며, 그 분배율에 따라 이윤을 나눠 갖습니다. 반대로 손실이 발생하면 일반적인 주식회사 제도와 달리 자금 제공자들은 사업에 대해 출자자로서 무한책임을 져야 합니다.





◎ 무라바하(Murabahah)

무라바하는 매입자가 자산에 대한 매입 자금이 부족할 경우 금융기관이 자산을 대신 매입해 이를 다시 매입자에게 판매하는 것을 말합니다. 은행에서 돈을 직접 받지 않고 왜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는데요,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샤리아는 이자를 금하기 때문입니다. 즉, 단순히 은행이 자금을 제공하고 이로부터 대가를 받으면 샤리아에 반하는 행위가 됩니다. 하지만 무라바하를 통해 은행이 얻는 이윤은 자금거래에서 발생하는 이자수입이 아닌, 실물거래에서 발생하는 마진이기 때문에 샤리아에 적격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동지역에서는 무라바하가 전체 이슬람 은행 대출액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습니다.


◎ 수쿠크(Sukuk)

 이자를 금하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표적인 자금조달 수단인 채권도 독특한 방향으로 발달했습니다. 흔히 이슬람 채권이라 불리는 ‘수쿠크’는 위에서 설명한 것들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자산임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자금이 필요한 채무자가 실물자산을 채권자에게 판매하면 채권자는 인수 후 이 자산을 다시 채무자에게 대여합니다. 그리고 채권자는 이 자산에서 발생하는 사용료를 이자처럼 받는 것입니다. 만기에 가서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자산을 다시 판매함으로써 원금을 회수합니다.





이슬람 금융의 중심 국가, 말레이시아

말레이시아를 떠올리면 어떤 단어가 제일 먼저 생각나시나요? 앞으로는 ‘이슬람 금융의 허브’로 기억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지난해 세계에서 발행된 약 1400억달러의 수쿠크 중 74%가 말레이시아에서 발행됐을 만큼, 말레이시아는 이슬람 금융의 선도국입니다. 이슬람 금융의 국제표준을 제정하는 이슬람금융위원회(IFSB) 또한 말레이시아에 있습니다. 


또한 매년 35% 이상씩 성장하는 수쿠크 시장은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를 제외한 동남아시아 국가 최초로 1인당 GDP 1만달러를 넘을 수 있는 발판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슬람 금융으로 말미암아 무섭게 성장하는 말레이시아의 모습은 이슬람계가 아닌 국가에서도 이슬람 금융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슬람 금융의 미래를 준비하는 국가들, 그리고 대한민국

수쿠크 발행을 추진하는 영국은 앞서 2003년 세제개편을 통해 수쿠크에 대한 취득세를 감면했습니다. 싱가포르 또한 발행이 적긴 하지만 2005년부터 은행에 수쿠크 거래를 허용하고 세금감면을 제도화 했습니다. 일본도 마찬가지로 수쿠크에 대해 세제혜택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사실 한국도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은 후 ‘수쿠크법’을 추진했습니다. 이슬람 금융을 통해 미국․일본 등 선진국 외에도 외화자금 조달을 다각화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특정 종교와 관련한 세제혜택은 공평하지 않으며, 테러자금에 악용될 수 있다’는 일부 여론으로 인해 지금은 도입이 무산된 상태입니다. 


이슬람 금융의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으며, 그 활용도 또한 높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인프라의 수요가 많은 중동지역에서는 이슬람 금융거래 방식이 기업의 자금조달에 많은 도움을 줍니다. 이슬람 금융에 대한 관심과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만큼, 한국도 이슬람 금융 활용에 대한 전략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