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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희망이 된 경제 이야기

재능기부 - 당신이 갖고 있는 작은 재능 하나면…



지난해 12월 워커힐호텔의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최고의 셰프들이 경기 여주군 신륵사 부설 예비 사회적기업인 신륵노인복지센터를 찾았다. 바쁜 이들이 휴일까지 반납하며 센터를 찾은 까닭은 이곳의 도시락 사업을 돕기 위해서였다. 평균 경력 10년차가 넘는 셰프들은 매서운 눈빛으로 센터의 문제점을 꼭꼭 짚어냈다.


“주방시설은 청결이 우선입니다. 손님의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위생 상태를 지키기 위해서는 첫째도 둘째도 청결해야 합니다.”_이종섭 조리장

“간단한 밑반찬으로 연근전 같은 사찰음식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여주에서 나는 식재료로 만드는 반찬도 필요할 것 같군요.”_이종필 조리장


그로부터 10개월이 지난 지금, 신륵노인복지센터의 도시락은 저렴한 가격에도 맛있는 반찬을 제공한다고 입소문이 나 회원 수가 3배 이상 늘었다.

사회적기업을 대상으로 요리 리모델링이라는 따스한 손길을 건네는 8명의 워커힐 셰프는 지난해 9월 SK그룹의 재능기부 봉사단 SK프로보노에 자원하면서 뭉쳤다.

경력 20년차인 송영원(43) 워커힐호텔 조리팀장은 “반평생 음식 만들기에 열정을 쏟았으니 이제 그 비법을 베풀 때가 됐다”며 “소외계층의 먹을거리 문제를 덜고 경력단절여성 등의 일자리 창출에 도움을 주는 사회적기업의 음식 사업을 도울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지난 9월 29일 셰프들은 뜻깊은 자리를 마련했다. 신륵노인복지센터에 이어 서울 용산지역 성매매 여성들의 자활을 돕는 예비 사회적기업인 막달레나공동체 동고리국수집에서 국수 메뉴 개발에 도움을 주던 차에 아예 도움을 요하는 사회적기업의 조리사들을 모두 한자리에 불러 모으자는 아이디어를 냈던 것. 이날 15곳의 사회적기업 조리사들은 특급호텔 조리장에서 한식, 일식, 중식 셰프들에게 일급 레시피를 일일이 지도받으며 배울 수 있었다.

한식 메뉴를 담당한 이종섭(36) 조리장은 “‘요리’라는 재능으로 더불어 사는 상생의 지혜를 배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고, 이종필(41) 조리장은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동료들과 재능 나눔으로 사이가 더욱 돈독해졌다”며 “메뉴를 개발해 알려드리다 보니 조리 공부도 더 하게 되는 등 나눔을 통해 새로 깨닫는 것이 많아 오히려 감사하다”고 했다.
 


나눔문화 확산의 일등공신으로 재능기부가 떠오르고 있다. 재능기부는 연말연시 불우이웃 돕기처럼 연례행사나 단순한 모금 차원의 나눔이 아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기술을 소외계층을 위해 쓰는 것을 말한다.

국내에서 재능기부가 활발해진 이유는 라틴어 프로보노 퍼블리코(Pro Bono Publico)의 줄임말로 ‘공익을 위하여’를 뜻하는 ‘프로보노’ 운동에 힘입어 발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유명인의 재능기부는 파급력이 커 재능기부에 대한 공감대를 이끌고 있다.

소설가 김영하 씨는 지난 7월 말부터 네이버 블로그 ‘김영하의 스토리특급(blog.naver. com/story_xpress)’에서 신작을 비롯해 이제까지 발간한 단편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블로그에서 그의 글을 읽은 누리꾼은 해피빈 콩으로 기부할 수 있고 이렇게 모인 해피빈 콩은 개당 1백원으로 현금화해 아이티 지진피해 복구를 돕는 유엔난민기구(UNHCR)에 기부된다.

앤 메리 캠벨 UNHCR 한국 대표는 재능기부로 아이들을 돕는 김 씨에게 지난 8월 감사패를 수여했다.


이에 앞서 5월 노희경 드라마 작가도 네이버 블로그를 통해 글을 연재하면서 석 달간 약 5백20만원의 기부금을 모아 화제가 됐다. ‘광고 천재’라 불리는 이제석(28) 씨는 노숙인을 위한 잡지 <빅이슈>의 한국판 1, 2호 표지디자인을 재능기부로 만들었다.

지난 9월 초엔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가 트위터(@jsjeong3)를 통해 시골 마을 아이들을 위해 과학자의 작은 도시 강연 기부를 제안했다. 정 교수의 글에 강연 때 도움을 주겠다는 답변들이 쏟아졌고, 이들 중 80여 명의 재능기부자들이 강연할 예정이다. 정 교수는 “앞으로 매년 10월 마지막 주 토요일을 ‘재능기부의 날’로 정해 3백65일 중 단 하루만큼은 나의 재능으로 남을 위해 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일반인의 재능기부를 돕는 ‘재능을 나눕시다’ 캠페인도 호응을 얻고 있다. 올해 1월 한국자원봉사협의회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조선일보>가 ‘봉사와 나눔 운동본부’를 구성해 재능기부 캠페인을 시작했다.

현재까지의 재능기부 신청은 4만1천여 건. 캠페인 홈페이지에 들어가 자신의 특기와 거주지 등을 신청하면 본부에서 도움이 필요한 단체와 연결해준다. 

 


지난 1월 우연히 재능기부 기사를 보면서 재능 나눔 활동에 동참하게 된 용인외국어고 2학년 김홍일(18) 군은 “재능 나눔으로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김 군은 현재 한 달에 두 번 평택시에 있는 소외계층 초등학생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친다.

그는 “바이올린을 켜며 환히 웃는 아이들을 보면 메마른 삶에 한 줄기 희망이 된다”며 “한때 부와 명예를 거머쥐는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이젠 가진 것을 나누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대학생이 돼서도 나눔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업에서도 기업 역량에 맞는 재능기부가 이어지고 있다. 현대카드는 서울역 앞 버스정류장, 제주 올레길 이정표를 디자인해 디자인을 통한 재능기부를 계속해오고 있으며, LG생명과학은 LG복지재단과 함께 1996년부터 올해까지 총 5백여 명의 저소득 저신장 아이들에게 46억원 상당의 왜소증 치료제를 지원했다.

 
출처 : 위클리공감 7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