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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희망이 된 경제 이야기

튤립 한송이로 집 6채를 살 수 있었던 이유


신종플루(H1N1)처럼 바이러스가 경제에 미친 영향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두바이월드 사태에 대해 언론에서 투기세력을 운운하는 가운데, 일찍이 바이러스와 투기가 결합됐던 사건을 새삼 다시 떠올렸습니다. 지난 기사(하이퍼링크 걸어놨어요) 끝에서 미리 약속한 것처럼, 집 값보다도 비쌌던 꽃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약 1500년 경부터 시작된 대항해 시대는 서양에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진기한 물품들(후추를 비롯한 여러 향료, 비단 등)과 막대한 양의 금과 은을 선사합니다. 한편 유럽에서 힘의 중심축도 변하기 시작합니다. 1588년 칼레 해전으로 스페인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유럽의 신흥강자로 영국과 네덜란드가 떠오른 것입니다.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 설립과 세계최초의 주식거래소 개장, 세계 최초의 은행 설립 등을 기반으로, 금융에 있어 절대적인 강자로 떠오릅니다. 더할 바 없는 호황이었고, 과시욕을 드러내기에 더없이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이 때 튤립이 네덜란드에서 투자 상품으로 떠오릅니다. 페르시아에서 들어온 튤립은 당시 유럽인들에게 엄청난 인기였습니다. 바로 튤립이 사람들에게 과시욕을 충족시켜주면서도 매력적인 투자 상품으로써 각광받습니다. 남들과는 좀 더 다른 튤립에 더 높은 가격이 정해지고, 희소성이 높을수록 가격도 치솟게 됩니다. 이윽고 남들과는 다른 튤립,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튤립, 나만의 특이한 튤립을 갖고 싶은 사람들의 열망을 충족시키는 튤립이 나타납니다. 바로 바이러스에 걸린 튤립이었습니다.
Virus에는 동물을 감염시키는 것 뿐만 아니라 식물이나 박테리아를 감염시키는 것들도 있습니다. Subvirus로서 viroid는 식물을 감염하여 병을 일으킵니다. 그런데 튤립에서 꽃잎의 색이 섞이는 증상이 나타납니다. 마치 두 색깔의 물감으로 칠한 뒤 손가락으로 휘저은 것처럼 말입니다.






튤립은 처음에는 ‘투자 상품’이었지만 이윽고 광풍과 함께 투기로 변모합니다. Viceroy라는 튤립은 구근 하나 가격이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밀 2마차분+호밀 4마차분+소 4마리+돼지 8마리+양 12마리+와인 500L+맥주 4통+버터 2통+치즈 450kg+침대 하나+양복 한 벌+은으로 만든 컵 한 개=튤립 구근 하나’ 튤립 한 송이가 당시 네덜란드인들의 연평균 수입의 16배 가량인 것입니다. 이윽고 1635년에는 이 기록마저도 갱신됩니다. Semper Augustus라는 튤립은 집 6채 가격과 맞먹게 됩니다.

1636년 증권거래소에서도 튤립이 거래되기 시작합니다. 결국 너도 나도 튤립 시장에 뛰어듭니다. 귀족, 상인, 농부 각계 각층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온통 광풍에 휩싸입니다. 수요가 공급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옵션 거래와 같이 튤립 뿌리를 미리 살 수 있는 권리도 사고 팔기 시작합니다. 이제 사람들은 피어날 튤립 꽃을 보기도 전에 미리 튤립 뿌리에 대해 일정 기대를 갖고 높은 가격에 사고 팝니다. 빚을 내어서라도 튤립을 사고, 장밋빛 미래만 기대하는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1637년 2월 결국 그 날이 왔습니다. 튤립 가격은 불과 1% 수준으로 폭락했습니다. 줄줄이 부도가 이어졌고, 빚을 냈던 일반 가계들도 주체할 수 없이 허리가 휩니다. 거리에는 온통 파산한 사람들입니다. 결국 정부가 나서 매매 가격의 3.5%만 지불하면 채무를 변제해주겠다는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자료에 따라 해석 수치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1634년~1637년 3년 동안 튤립 가격의 상승은 5000% 이상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경이로운 기록임에 틀림없습니다. 거품이 엄청났던 만큼 나라 경제에 미친 충격도 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네덜란드가 영국에게 유럽 경제에서 주도권을 내주게 된 계기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호황기에는 사람들의 기대에 따라 어느 정도 거품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비이성적일 정도라면, 거기에 발을 들인 개인에게도 나라에도 엄청난 후유증을 가져오게 됩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부동산 시장의 몰락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이 이제는 너무 흔한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오마하의 현인 워렌 버핏은 파생 상품을 두고 금융대량살상무기라고 비난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증시에서 초단타매매나 묻지마 투자가 한때 붐을 이뤘었습니다. 부동산 거품에 대한 갑론을박도 여전히 진행 중에 있습니다.
거품, 투기, 그리고 투자. 투기와 투자는 어떻게 다른 걸까요? 어느 정도 수준이어야 거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일까요? 누군가 묻는다면, 명확한 답을 갖고 계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