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루마블 경제이야기/희망이 된 경제 이야기

77조 탄소세, 위기인가 기회인가


글로벌 위기 이후 전 세계에 불고 있는 녹색 열풍은 혁명적이다. 친환경 승용차가 아니면 수출도 못할 판이다. 산업계는 녹색 위주로 재편되고 금융계는 그린 파이낸스 상품이 쏟아진다. 정부 정책도 녹색성장에 무게가 실린다. 여기다 연말에는 ‘녹색 쓰나미’가 예고돼 있다.

녹색 쓰나미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다. 12월 7일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총회는 온실가스 감축의 기본 틀을 정할 예정이다. 개발도상국들은 총회 결과에 따라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오는 2013년부터 부담해야할 것으로 전망된다. 프랑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의 탄소세 부과 방침 발표는 총회에서 환경 선진국들의 압력 정도를 가늠케 한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 내년 1월부터 가정과 기업이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에 탄소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 의지를 과시함으로써 총회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전략으로 받아들여진다. 프랑스는 온실가스 감축 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나라들로부터 수입되는 제품에 탄소 관세를 물리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내 환경 선진국들은 지속가능한 성장발전과 녹색성장 구현을 목표로 내세워 1990년대부터 에너지세와 별도로 탄소세나 폐기물세를 도입했다. 탄소세와 폐기물세를 모두 도입한 환경 선진국은 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폴란드•스페인 등 6개 나라다.이들 나라는 휘발유, 등유, 천연가스, 석탄 등의 모든 화석연료에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환경 선진국의 트렌드는 탄소배출을 줄이고, 저탄소시설과 기술활성화를 위해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아울러 탄소 배출 총량을 제한하고 탄소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환경 규제를 가하면 규제가 없는 나라로 산업기반이 이전하는 현상이 빚어질 수 있다. 환경 규제를 실시하는 나라는 경쟁력 측면에서 불리하다. 그래서 온실가스 감축을 비롯한 환경규제를 가하라는 환경 선진국들의 압력은 거셀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 감축 의무의 수위가 높을수록 일찌감치 탄소세를 도입한 환경 선진국들은 유리한 위치에 있게 된다.


우리나라는 2007년 4억 8871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해 총 배출량에서 세계 9위 국가다. 인구 한 사람당 배출량은 10.09톤으로 세계 평균인 4.38톤의 2배를 넘는다. 철강•석유화학 등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업종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구조를 안고 있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에너지 효율은 이미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이다. 개도국 지위를 인정해달라고 계속 주장하기는 쉽지 않고 온실가스 감축의무를 피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기후변화협약 총회 결과는 우리에게 엄중하게 다가올 것이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것 같다.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방향이다. 정부도 국제적인 이산화탄소 다이어트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 가운데 하나가 탄소세 부과다. 자동차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기준치 이하 차량은 차값을 깎아 주고, 초과하면 세금을 부과하는 정책을 이미 시행중이다.

기획재정부는 우리 경제가 감내할 수준의 자발적인 중기 이산화탄소 감축목표(2020년 기준)를 연내 발표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 박재완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은 “앞으로는 버는 것에 세금(Earning Tax)을 부과하는 것이 아니라 탄소를 태우는 것에 세금(Burning Tax)을 매겨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격과 세금이 가장 강력한 변화의 동인이 되기 때문에 세금 부과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조세ㆍ금융 시스템 개혁도 추진할 계획이다. 탄소세 도입은 기본적으로 탄소총량 배출권 거래제(Cap & Trade)와 같이 실시해야 한다. 탄소세와 탄소총량 배출권 거래제를 함께 시행하려면 실제로 도입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지 모른다.
탄소세 부과가 어떤 식으로 이뤄질 지는 조세연구원의 조사결과에서 감을 잡을 수 있다. 조세연구원 보고서가 그대로 정책으로 채택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조세연구원이 기획재정부 용역을 받아 작성한 에너지 환경세제 개편 보고서는 수송 연료에 국한됐던 1•2차 에너지 세제개편과 달리 발전•가정•상업용 등 대상 범위가 에너지 전 부문을 대상으로 한다. 가정•상업•산업용 에너지에 모두 탄소세가 적용될 것이라는 얘기다. 탄소세 부과는 전 국민에게 영향을 줄 것이고, 에너지 비용 부담은 크게 늘어날 전망이다. 탄소세가 부과된다고 기존 에너지 관련 세율이 인하될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 않아도 재정적자가 심각한 수준에 있어 에너지 관련 세율 인하는 쉽지 않을 것이다.
탄소세가 부과되면 국내 제조업체들이 부담해야할 비용은 2013년 77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이 흐를수록 온실가스 배출 감축기술이 발전하면서 배출 감축량이 커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탄소세를 통한 환경 규제로 인한 사회적 부담도 점차 줄어들 수는 있겠지만 정부가 탄소세 도입을 발표할 경우 우리나라는 사회적 논란에 휩싸일 우려가 있다.
프랑스는 사르코지 대통령의 발표 이후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3분의 2가 탄소세 부과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집권 여당에 비상이 켜진 것이고 여당 의원들 사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프랑스 정부의 홍보 문제점도 지적된다. ‘세금’이라는 용어 대신 다른 용어를 사용했다면 반발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도 프랑스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탄소세 부과방침을 발표한다는 점은 정부 여당에게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프랑스의 논란은 타산지석이다. 탄소세 부과를 위해서는 국가주력 산업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기술개발도 유도해야 할 것이다. 소득분배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감안해 취약 계층을 보호 방안도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된다. 현재 세금 부담이 높은 휘발유, 경유 등 에너지 관련 조세부담을 분산시키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탄소세 부과가 불가피하다면 파장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갖고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정부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은 험난할 것 같다. - 출처 : KDI 나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