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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희망이 된 경제 이야기

김제동 박원순 한비야, '직업'을 말하다


지난 11일 토요일, 구호활동가 한비야 씨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 제 정신이에요? 이 귀한 토요일 오후에, 여기서 여섯 시간을 있단 말이야?"  높은 언덕자락에 있는 경희대 평화의 전당으로 2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 많은 사람들이 희망을 꿈꾸며 6시간 릴레이 강연을 들었다면 믿을 수 있겠어요? 무엇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한 공간에 모이게 만들었을까요?

바로 "세상을 바꾸는 1천개의 직업" 강연 덕분이었습니다. 다양한 사회활동으로 유명한 시민단체 ‘희망제작소’에서 기획한 이 행사는 극심한 취업난, 우리 스스로 블루오션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열렸습니다. 도시농업설계사, 범죄 예방 디자인 연구센터, 대체에너지교육 전문회사, 자전거 지도 제작사업, 그린빌딩 인증전문가 등 전 세계에서 조금씩 세상을 바꾸고 있는 직업들 1천 개가 한 자리에 소개되는 자리였지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주축으로 방송인 김제동 씨, 재난구호활동가 한비야 씨가 강연자로 나섰습니다. MBC 박경추 아나운서의 매끄러운 진행 덕분에 큰 불편함 없이 6시간의 대장정이 무사히 마무리 되었습니다. 강연자들은 40분이라는 짧은 시간을 아쉬워하며 저마다의 입담으로 꿈과 직업, 희망을 이야기 했는데요. 강연자들과 관중 모두가 서로 뜨거운 에너지를 교환한 시간이었습니다.



김제동이 생각하는 "삶과 직업" 


김제동 씨의 강연


유쾌한 모습으로 등장한 김제동 씨는 직업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렸습니다. 돈을 버는 것만이 직업이 아니라, 자신이 행복한 일을 하는 것도 직업이라는 점이지요. "1년 중 며칠만이라도 진정으로 웃을 수 있는 일을 해라, 나와 너의 꿈을 꾸자. 타인의 꿈은 돕는 것은 꿈 너머의 꿈" 이라는 문장이 그의 입에서 나오자 사람들은 뜨거운 박수로 답했습니다. 꿈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자신있게 '스파이더 맨'이 되고 싶다고 하는 어린 아이들과 우리는 다릅니다. 다 커버렸으니까요. 우린 사다리를 보고 지붕에 올라간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사다리를 보고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아이들의 꿈만큼 공평한 것이 있을까요? 가끔은 자신만의 꿈을 소중하게 간직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너무 척박한 현실이라 평생 꿈꾸며 살라고 말하기 미안하다는 뜻이지요. 그는 풍부한 제스처와 재치있는 말솜씨로 한 자리에 모인 청춘들에게 꿈을 불어넣어주었습니다. 손짓과 말 한마디에 사람들이 큰 박수로 호응한 건 그에게서 희망을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박원순 소셜 디자이너, "세상을 바꾸는 건 찰나의 아이디어!"


전직 검사, 인권 변호사, 참여연대와 아름다운 가게를 거쳐 희망제작소에 이른 박원순 씨. 그는 스스로를 소셜 디자이너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 단 하나뿐인 직업이지요. 병무청에서 날아오는 입영통지서에 전역날짜를 함께 넣는 것, 지하철 손잡이의 높낮이가 다양해진 것.. 고쳐지면 더 좋은 사소한 불편함이그의 레이더망에 포착되면 쉽게 빠져나갈 수 없었습니다. 이번 강연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업들이 메세나 활동이나 기부를 통해 사회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지만 이제 기업과 정부, 비영리 단체의 성역은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정부가 사회적 기업이나 NGO의 도움을 받아 시민들을 위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기업의 투자와 시민단체의 기획, 정부의 지원이 함께 모이는 환상의 삼박자, 사회를 조금씩 바꾸는 중요한 열쇠지요.



이번 강연회에는 아직 존재하지 않거나 거의 아무도 하지 않는 직업군으로 가득했습니다. 고루한 일상을 살짝 뒤집어 일자리로 만들어내는 박원순 소셜 디자이너의 상상력에 감탄했습니다. 큰 성공 가능성이 점쳐지는 직업들이 소개될 때면 사람들은 박수와 환호로 답했습니다. 박원순 디자이너는 쑥스러운 듯 웃다가도 경직된 사회와 답답한 취업시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땐 높은 목소리로 힘주어 현실을 꼬집으셨습니다.

흉흉한 소식뿐인 요즘 뉴스로 눈살 찌푸릴 때가 많았다면 훈훈한 미담으로 가득한 'GOOD NEWS' 주간지를 만드는 것도 신선한 아이디어입니다. 유럽엔 NGO 단체들만 입주할 수 있는 빌딩이 실제로 있다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NGO 사무실은 일반 상점보다 공실률이 훨씬 적습니다. 장사가 잘 되면 있고, 안 되면 빚진 채 나가는 식이 아니니까요. 오늘도 꾸준히 한 자리에서 다양한 성과를 내기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안정적인 기반을 제공하는 건물이 생긴다면 분명 조금씩 긍정적인 변화가 생기겠지요.

뿐만 아닙니다. 기부하고 싶지만 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잘 몰라 기부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지요. 이런 부분을 해소해주는 기부 전문 컨설턴트도 새로운 직업군이 될 수 있습니다. 펀드레이징 전문 교육 학교, 재활용 제품 디자이너, 서재 전문 디자이너, 농촌 개발 컨설턴트 등 새로운 명함을 낼 수 있는 직업군은 수없이 많습니다. 모두가 더 풍요로워지는 방향으로요. 강연 중간에 스치듯 지나간 박원순 변호사의 말이 있었습니다. "실제로는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텐트치고 1천 개의 희망 직업을 나누고 싶었다." 저는 그 말에서 박원순 변호사의 열정을 느꼈습니다. 


좋아서 시작한 음악, 직업이 되다

2부 강연 시작을 알린 '좋아서 하는 밴드' 공연

한 곡의 노래 가사를 짓는데 1년을 들일 정도로 풍부한 감성과 음악적 능력을 가진 밴드가 있습니다. 내 노래를 제대로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거리의 악사로 나섰고요. 이제 앨범을 팔면 먹고 살 정도의 수익을 내며 나름 잘 나가는 밴드가 되었습니다. 음악이 '좋아서 하는 밴드'가 2부의 서막을 알렸습니다. 네 곡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동안 관객들은 무대 위 그들에게 집중했고, 그들은 좋아서 하는 밴드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진심으로 기쁘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음악으로 들려준 셈입니다.  누구나 '내가 만족할만한' 꿈을 꾸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비율은 높지 않죠. 그들은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 한 발자국의 용기에서 삶의 전환이 시작되었습니다. 


한비야,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강연 중인 한비야 씨


'마음 속에 세계지도를 품자'는 그녀의 말은 책으로 나올 만큼 유명하지요. 그 세계지도 안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나라와 우리를 필요로 하는 나라가 모두 들어있습니다. 자본과 정치적 힘에 좌우되면서 갈라지는 나라들,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이 2주일치 밥값인 나라들이 아직도 있습니다.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는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문장이었습니다. 이 말을 늘 생각하라던 그녀의 조언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그녀의 마음에 구호활동과 인도적 지원이라는 불화살을 쏜 케냐 의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병으로 얼굴이 짓무른 아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어루만지고 치료해주며 행복해하던 그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돈 버는 데에만 쓰기엔 내 재능과 기술이 너무 아깝지 않아요?" 정말 멋진 삶은 한 번 쯤 이런 말을 타인에게 들려주는 삶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주입시킨 꿈은 진짜 꿈이 아닙니다. 그건 마치 하와이의 폭염 한복판에서 밍크코트를 입고 있는 것이지요. 사람들이 환호하는 건 밍크코트의 멋진 모습이지 힘겹게 코트를 입은 채로 버티고 있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녀는 알래스카에서 밍크코트를 입을 수 있는, 내 가슴을 뛰게하고 나에게 꼭 맞는 꿈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꿈을 가진 뒤에 할 일이 있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주문을 외우는 것이지요. 뜨거운 물 99도가 진정으로 끓기 시작하는 순간, 100도가 될 때까지 “두드려라.  열릴 때까지.”




MBC 박경추 아나운서의 진행으로 박원순 소셜 디자이너와의 인터뷰가 있었습니다. 


물론 천 개의 직업 속엔 손쉽게 접근하거나 실현가능한 직업들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디어는 참신하지만 아직 준비가 덜 된 20대들에겐 꿈의 직업인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사실 우리의 머릿속에 각인된 ‘직업’의 뜻은 각자가 만들 수 있는 가치와 돈을 맞바꿔가며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인데요,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수 있냐는 측면에서 불안한 면도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꿈만을 바라보고 선택하기엔 우리 사회가 실수에 각박한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20대가 끝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1천 개의 직업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은 젊은 생각과 용기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합니다. 젊음을 사랑하는 것과 젊음을 맹목적으로 쫓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지요.  

공식적인 강연이 끝나고, 박원순 디자이너와 한비야 씨가 함께한 Q&A 시간에서 한비야 씨가 가장 목소리를 높인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메일함엔 “저 이제 새로운 일을 하려고 하는데 너무 늦은 것 같아요. 어쩌죠?”라는 내용의 메일이 자주 온다고 합니다. 마흔 살이 넘어 새로운 삶에 눈뜬 한비야 씨에게 이런 질문은 가혹한 것 아닐까요?^^ 그녀는 "이 강연회를 들은 사람들은 나에게 다신 저런 질문 하지 말라"며 재치 있는 답변을 하셨습니다.



하나씩 나눠가진 1천 개의 직업, 더 풍요로워지는 세상
평화의 전당 3층까지 들어찬 관중들의 연령대는 다양했습니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초등학생들부터 50대 중년 분들까지. 무엇보다도 이번 강연회에서 놀랐던 점은 10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입니다. 아직 공부와 놀이에 푹 빠져있을 친구들이 자리를 가득 채운 모습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희망과 신선한 아이디어를 찾으러 온 수많은 청춘들을 마주하니 얼마나 좋았을까요. 무대에 오른 강연자들이 행복해하던 이유가 그제야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직업을 찾기 위해 이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는 사실은 우리를 씁쓸하게 합니다. 그러나 바꿔 생각하면 일상을 바꾸는 아이디어 하나하나가 모두 직업이 될 수 있습니다. 희망은 그렇게 만들어 가는 것이지요. 

이번 강연회가 단순히 직업만을 소개하는 박람회였다면 삭막했겠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관중들의 표정은 무척 밝았고요. 사소한 종이 한 장도 그냥 버리지 않는 박원순 소셜 디자이너의 수집력과 열정으로 1천 개의 직업이 모였습니다. 그 1천 개의 직업을 하나씩 나눠가지며 풍요로워질 세상을 꿈꿀 자격, 우리에겐 충분히 있습니다. 물리적인 나이보다 젊은 생각이 더 중요함을 늘 기억하기, 그렇게 새로운 희망을 꿈꾸는 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