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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환경을 살리는 경제 이야기

인도에 대해 당신이 절대 모를 단 한가지


우리나라와 인도가 CEPA 협정문에 공식서명함으로써 양국의 관계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섰다. 수교 35년만의 큰 진전으로 1990년대 초부터 인도가 ‘동방’에 관심을 가진 지 약 15년만의 결과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인도에서 공부하고 이후 양국의 크고 작은 변화의 과정을 목도한 사람으로서 양국의 역사적인 ‘악수’에 감회가 남다르다. 이러한 진전이 또 다른 변화의 서막이라는 점에서 이어질 미래에 거는 기대도 크다.
하나의 국가이지만 수많은 문화와 사회의 집합체, 우리나라 남북한 영토의 약 17배로 러시아와 영국을 뺀 유럽 대륙과 비슷한 영토대국, 인구의 감소가 주요 화두로 떠오른 우리나라와 달리 머지않아 세계 최대의 인구대국이 될 인도와의 이번 협정은 단순히 우리에게 경제적 이익을 보장하는 거대시장의 탄생으로만 여길 사안이 아니라 미래와 연계되는 보다 복합적인 의미를 가진다.

인도를 오랫동안 공부한 내가 이 시점에서 제안하는 건 인도를 잠재적 시장으로 대상화하지 않고 우리와 미래를 공유할 동반자로서 이해하자는 것이다. 각 부처나 분야 별로 다채로운 전망과 손익계산이 분주하겠지만, 12억의 인구를 가진 인도는 우리가 일방적으로 이익을 추구하도록 허용할 만큼 무력하지 않다. 치열한 생존투쟁이자 무역전쟁의 장에서 ‘상대를 얕보면 이미 패배한 것’이나 다름없다. 역동성과 미래를 가진 주체로서의 인도, 우리의 파트너로서 인정하면서 관계의 변화에 대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 인도는 낮게 평가되거나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지금도 과학과 합리성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자연재해와 질병이 만연한 후진국의 이미지가 강하다. 요가와 명상을 하면서 정치나 경제엔 관심과 능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사는 종교적인 나라로도 여겨진다. 최근에는 인도의 경제발전으로 인식의 전환이 있지만 인도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거나 그 진면목을 제대로 따려보려는 이들은 아직도 많지 않다.


아는 만큼 보이고 대처할 수 있는 법이다. 인도를 무시하고 폄하하면서 그곳에서 이익을 추수하는 건 모순이다. 사실 인도는 외부세계에 쉬이 점령될 만큼 만만하지 않다.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인 인도는 ‘하나의 세계, 하나의 문화’라는 생각을 무색하게 만들고 각 지방마다 다른 빛깔, 사람마다 계층마다 다른 삶의 방정식을 소지하여 ‘이것이다, 저것이다’라는 일반화를 거부한다. 인도 안에 수많은 ‘작은 인도’가 존재하는 것인데, 겹겹인 그 인도의 힘이 외부세계에겐 장벽이다.
다원적인 인도, 천의 얼굴을 가진 인도는 전통적으로 국가보다 사회가 강한 곳으로 중앙의 정치적 변화가 지방의 생활에 극적 변화를 주지 않는다. 지금도 보통사람들은 수도 델리에 있는 중앙정부보다 자기가 사는 지방정부의 움직임에 민감하고, 그래서 현재 대다수의 주정부는 지역의 문화와 이익을 대변하는 지역의 정당이 장악하고 있다. 넓은 인도에서 도출되는 보편적 결론이 지역에 대한 이해와 상충되고, 하나의 인도가 여럿의 인도와 동일시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도의 경제발전을 실증하는 중산층이 소득과 소비를 늘리면서 새로운 생활방식을 인도 사회에 촉발하지만, 한쪽에선 여전히 갠지스 강에서 목욕하는 사람들과 빈부격차와 도시의 슬럼화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산다. 루이비통백과 최신휴대폰을 들고 유명디자이너가 만든 의상을 입고 뽐내는 도시 여성들보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주어진 운명과 싸우는 농촌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발전의 이데올로기를 신봉하는 이도 많지만, 세계화와 새로운 삶의 방식에 반대하며 스와데시를 주창하는 여론과 운동도 어느 나라보다 강하다.
인도를 공부하는 내게 많은 사람들은 인도인이 영리하고 교활하다고 자신의 ‘나쁜’ 경험담을 털어놓는다. 사실이다. 나는 그것을 인도인의 질긴 생명력이라고 부른다. “인도인은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돈 벌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라는 세평이 있고, 실제 인도에서 비즈니스를 선험한 사람들은 ‘우정’과 ‘돈’ 중에서 ‘돈’을 선택하는 그들의 처세에 불만이 높다. 우습게 여긴 상대의 공격이 더 아픈 법이지만, 그들이 그런 방식으로 산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순 없다.

인구의 대다수가 믿는 힌두교는 세속적이며 현실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고, 물질을 추구하는 인도인의 행동규범에 큰 영향을 준다. 인도인이 옛날부터 상업과 무역에 뛰어난 능력을 자랑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벌이를 하여 성공한 데에는 종교적인 재가가 연결되었다. 부의 여신을 숭배하는 축제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인도에서 돈을 버는 일은 주변의 경멸을 받지 않는, 신에게로 돌아갈 이익을 챙기는 정당한 행위다. 절대적인 선이 없다고 할까.

어느 날 잠자는 사자의 갈기를 겁 없는 생쥐가 갉아먹기 시작했다. 잠이 깬 사자는 화를 내며 생쥐를 잡으려고 했지만 생쥐는 약을 올리듯 쥐구멍으로 들어갔다. 하찮은 적을 직접 상대할 수 없다고 여긴 사자는 마을에 내려가 고기를 미끼로 고양이를 사자 굴로 데려왔다. 사자는 생쥐의 소리가 날 때마다 고기를 던져주며 생쥐를 잡으라고 고양이를 격려했고, 생쥐는 고양이가 무서워 쥐구멍에서 나올 수가 없었다. 여러 날이 흐른 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생쥐는 쥐구멍 밖으로 나왔고, 곧 고양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생쥐가 사라지자 사자는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지 않았고 얼마 뒤에는 아예 고양이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이 인도 우화는 “고양이는 생쥐가 있으므로 존재”한다는 걸 알려준다. 만화의 주인공 톰에게 제리가 필요하듯이 이제 우리에겐 인도가 필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인도라는 시장이 있어야 우리가 인도에 보낼 상품과 서비스, 투자가 있을 수 있다. 역으로, 우리의 시장이 있기에 인도의 모든 것들이 의미를 가진다. 내가 여기서 이러한 ‘윈-윈’, 곧 거시적인 견지에서 상생하는 정신을 가지자고 말하는 것은 ‘백면서생’의 헛소리가 아니다. 생각을 바꾸면 많은 것이 바뀔 수 있다. 독을 독으로 다스리듯 인도는 인도로 봐야 하지 않겠는가. 출처: KDI 나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