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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세계의 경제 이야기

중소기업이 크는 나라, 대만이 말하는 중소기업의 미래

최근 세계경제가 회복되면서 우리나라 기업들 역시 각종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연간 영업이익 1조원 이상을 달성한 기업이 사상 처음으로 20개사를 넘었는데요, 하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시선도 큽니다. 대기업이 엄청난 실적을 거두고 있더라도, 이러한 실적이 중소기업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실제로 지난 1997년 이후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2곳, 중견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성장한 기업은 고작 26곳에 불과합니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작년 한 해 커다란 화두 중의 하나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과연 앞으로 우리나라는 중소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우리나라 사업체 수의 99%, 고용의 88%, 생산의 46%, 수출의 38%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리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 경제의 근간을 일으키는 힘인데요.  

                                                                           출처 : 한국무역협회(조선일보)

우리나라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기 위해 해외 사례를 참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와 경제 여건과 구조가 비슷한 대만을 살펴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대만은 국토가 좁고 천연자원이 부족하다는 면에서 우리와 비슷한 여건이지만, 수출 지향형 중소기업이 많아 세계 16대 무역국가에 올라있습니다. 또한 중소기업이 전체 기업의 97%, 고용의 77%, 수출의 51%를 담당하고 있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경제 구조를 지녔습니다.
하지만 지난 1997년, 외환위기가 우리나라를 포함해 동아시아를 휩쓸고 있을 때에도, 대만은 4% 안팎의 안정적인 성장세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시아에서도 눈에 띄는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대만의 이러한 힘이, 바로 중소기업으로부터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대만은 ‘중소기업의 천국’이라고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만큼 대만은 중소기업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겠죠? 지금부터 어떻게 대만이 ‘중소기업의 천국’이 될 수 있었는지 이유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기업들 간의 상생과 협력
대만에서 기업들 간의 관계를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가 바로 ‘상생과 협력’입니다. 1997년에 설립해 불과 10여년 만에 전 세계 반도체 팹리스(fabless)분야 4위, RFWS 무선 칩셋분야 2위의 자리를 차지한 미디어텍(MediaTek)이라는 회사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원래 미디어텍은 UMC라는 회사로부터 분사한 중소기업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미디어텍이 지금과 같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모기업과의 관계가 수평적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모기업이었던 UMC가 가지고 있는 미디어텍의 지분이 1.5%에 불과할 정도로, 모기업은 분사한 기업을 지배하려 들지 않았습니다.
“대만의 기업들은 서로 협력할 뿐, 지배하지 않는다”는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대만에서는 기업 규모에 상관없이, 서로 간에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며 자신들의 경쟁력을 함께 키워나가는 사례가 많습니다. 대만 중소기업의 경우, 관련 기업이 원자재∙부품 등을 공동구매해 원가 경쟁력을 갖기도 합니다. 이에 비해 우리나라의 기업 풍토는 상생과 협력보다는 경쟁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특히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국내 중소기업들을 전략적으로 육성하기 보다, 당장 거래가 손쉬운 외국기업들과 협력하는 선택을 통해 다른 경쟁 상대를 키워주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습니다.  

R&D와 인력, 인프라에 대한 정부의 아낌없는 투자

                               ITRI의 전경 <출처 : 대만공업기술연구원 홈페이지(www.itri.org.tw)>

대만의 기업 경쟁력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만 기업 경쟁력의 산실’로 불리는 공업기술조사연구원(ITRI, Industrial Technology Research Institute)입니다. ITRI는 국정연구기관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ETRI(전자정보통신연구원)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73년 설립된 ITRI는 자체 보유 특허만 1만개가 넘어서, 우리나라의 삼성전자와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규모입니다. ITRI의 역할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이 곳에서 개발한 기술들을 기업들에게 나누어준다는 것입니다. 중소기업의 자금과 인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연구개발을 정부가 대신 맡고, 이렇게 개발한 기술을 업체에 맡겨 독립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독립한 업체가 140여개가 넘고, 매년 기업들에 이전하는 기술이 700여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세계 최대의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업체인 TSMC도 이 곳에서 연구를 수행하던 팀이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성장한 경우입니다.

기업들 간의 공정한 경쟁 구도
지난 해 한창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상생 방안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중소기업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강력히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시장지배적 집단에 의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실제 손해액보다 훨씬 더 많은 손해배상을 하게 하는 제도입니다.
그만큼 약자의 입장인 중소기업측에서 일부 대기업의 부당행위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토로한 것입니다.
대만 중소기업도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은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주로 한 곳의 대기업에 납품을 하는 반면, 대만의 중소기업은 여러 군데에 납품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만의 중소기업들은 자생력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판매 활로 개척을 게을리 한 것 아니냐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관행처럼 굳어진 대기업의 독점납품 요구가 중소기업들에게 커다란 압박으로 다가오는 게 사실입니다. 그리고 한 군데에만 납품하다 보니, 대기업의 제품 혁신과 납품 단가 인하 요구에 전전긍긍합니다. 이렇다보니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자생력을 가질 수 없고,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을 펼칠 수가 없습니다. 대만의 중소기업이 전문기술을 가지고 독자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중소기업 역시 독자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공정한 시장 환경을 만드는 것이 필요할 때입니다.

중소기업의 힘을 바탕으로 성장하는 대만경제
혹시 대만의 야구경기를 보신 적 있나요? 유심히 바라본 사람들은 대만의 야구는 홈런 위주의 장타보다는 안타 위주로 게임을 풀어간다는 것을 느끼셨을 겁니다. 이러한 꾸준함이 지속적으로 대만을 야구 강국으로 유지시켜주고 있습니다. 대만의 경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만은 중소기업 위주의 경제구조를 바탕으로 1950년대 이후 50여년 간 연평균 8% 안팎의 고속성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지난 2010년 1분기에는 수출이 무려 42.1% 증가한 데 힘입어 13.27%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 ITRI(한국경제)

이것이 바로 대만 중소기업 덕분입니다. 이제는 대만 중소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중소기업에서 출발한 ACER, Trend Micro, ASUS, HTC 등 대만의 상위 브랜드 가치는 12억 달러를 넘어서며 글로벌 IT기업으로 성장했습니다.

                                출처 : Branding Taiwan/KOTRA 타이베이 무역관>(한국경제)

우리나라 경제의 뿌리, 중소기업을 살리려면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4년간 우리나라의 세계 1위 품목 중 21개가 중국에 잠식당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중 20개가 중소기업들의 경공업 제품인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그만큼 현재 우리나라의 중소기업은 위기 상황에 처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위기는 1차적으로 중소기업들의 경쟁력 악화에 원인이 있겠지만,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해준 것이 무엇인가도 함께 생각해보아야 할 때입니다.
만약 우리나라 대기업의 성장세가 둔화된다면 우리나라의 경제 자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뿌리가 강한 나무는 어떠한 비바람도 잘 견뎌낼 수 있듯이, 중소기업이 강한 나라는 어떠한 고난과 시련에도 경제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대만의 중소기업 성공 신화를 뒷받침 하고 있는 기업들 간의 상생과 협력, R&D와 인력∙인프라에 대한 정부의 아낌없는 투자, 공정한 경쟁 구도 등과 같은 요소를 본받아야 할 때 아닐까요? 좋은 중소기업이 좋은 기업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기업 생태계가 좋은 중소기업을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