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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세계의 경제 이야기

경매로 수강신청을? 싱가포르의 수강신청

제 룸메이트는 싱가포르 친구입니다. 얼마 전에 컴퓨터 한창 하고 있기에 무얼 하나 봤더니 수강신청을 하고 있더군요. 열심히 수강코드를 빨리치는 연습 혹은 마우스 클릭을 빨리하는 연습을 하겠거니 했습니다.  한국의 대학교들은 신청을 빨리한 학생이 수강과목을 얻는 수강신청 시스템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었지요.그러나 이 친구, 조용히 모니터 속의 숫자들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뭔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앞서 설명한 한국의 ‘fast finger' 제도와는 달라보였습니다.

수강신청만 되면 손가락이 1cm만 길어졌으면 좋겠고 컴퓨터는 슈퍼 컴퓨터였으면 하는 바람 누구나 있을 겁니다. 이처럼 수강신청만 되면 손가락이 길어지길 바라는 망상을 하거나 피씨가 가장 빠르다는 피씨방에 가야하는 한국의 현실을 잘 알기에 다소 평온해보이는(?) 이 친구의 수강신청모습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자세히 물어보니 기존 한국 대학교들의 fast finger 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시스템이 숨어있었습니다! 그것은 흡사 시장경제체 적용 이론들을 집약한 기발한 아이디어의 산물이었습니다.

수요와 공급의 법칙  

국립 싱가포르 대학의 수강신청 제도인 Cors는 일단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일정한 양의 포인트를 지급합니다. 그 후 수강을 선택하는 것은 모두 시장원리, 즉 수요와 공급을 통해 가격이 형성되는 법칙이 적용됩니다.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강좌는 그만큼 가격이 상승해 더 많은 포인트를 지급해야 강의를 신청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Cors의 수강신청의 오픈스테이지 화면입니다.)

수강신청은 크게 두 기간으로 나뉩니다. open stage와 close stage가 그것이지요. 처음 open stage에서는 말그대로 모든 정보가 오픈돼있는 기간입니다. 이 기간에는 어떤 강좌가 현재 초과수요인지 아닌지, 또 그 강좌에 최소한 얼마를 비드(bid, 경매용어로 '입찰에 응하다', '값을 부르다'의 뜻) 해야지 얻을수 있는지 가장 높게 비드한 사람의 정보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막판 서너시간정도의 close stage에서는 말그대로 이런 정보가 모두 가려진 상태로 진행돼 막판 눈치작전이 치열하게 벌어진답니다.  따라서 close stage동안 자기가 진짜 그 강좌를 듣길 원하면 더 많은 포인트를 소비하도록 설계가 돼있습니다. 수요와 공급 법칙으로 가격이 결정되고 자신이 원하는 강좌에 배팅을 하는 것이 흡사 '시장'과 닮아있습니다.


                                                                (Cors의 기본개념)

수강신청이 끝나고 자신이 원하던 수업을 듣지 못해 교수님을 찾아가는 풍경, 한국의 대학에서는 흔히 볼수 있는 풍경입니다. 그러나 Cors에서는 모든 것이 컴퓨터의 속도, 손가락의 속도가 아닌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되고 자신이 써낸 가격에 의해 수강신청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생들은 쉽게 결과에 승복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집니다. 자신이 실제 경매에 참여해서 얻지 못했다면 손가락 빠르기로 얻지 못했다는 것보다 허탈감이 덜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자기가 써낸 포인트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수 있으니까 말이죠. 자신의 선택에 자신이 직접 책임지도록 함으로써 수강신청시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을 최소화 한다는 측면에서 보자마자 참 선진적인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ors 이해하기!
자, 누가 수강신청에 성공했는지 다같이 맞혀볼까요?

공정거래와 사회적 약자의 보호
 세계 대부분의 국가들은 시장경제 체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순수히 시장의 자율만으로 100% 위탁하는 국가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공정 거래를 위해 여러 가지 규칙을 정하고 비교적 약자인 경제주체들을 보호하면서 동시에 시장의 자율성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Cors에서는 학년이 높은 고학년들 일수록 이른바 시장의 큰손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왜냐하면 이전 학기에 쓰고 남은 포인트들이 계속 축적되기 때문이죠. 따라서 갓들어온 신입생들은 시장에서 약자로 피해를 보게 됩니다. 따라서 Cors 에서는 1학년들만 수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독립된 별도의 다른 시장을 만들어 저학년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인센티브
싱가포르대학교의 학생들은 매학기 종료후 강의에 대한 수강평가를 하면 보너스 포인트100점, 학교 홍보실에서 진행하는 각종 설문조사에 응할 경우 30점을 보너스를 받는 등 학교 행정에 도움을 줄경우 수강신청에 쓸 수 있는 포인트를 보너스로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시장경제의 인센티브 제도와 흡사 닮아 있습니다. 학생은 수강평가와 설문조사를 함으로써 추가포인트를 얻고 학교는 학생들의 평가자료를 얻음으로써 양측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방학이 끝나면 어김없이 수강신청 시즌이 다가옵니다만 매학기 수강신청 때마다 각 학교들은 각종 문제들로 홍역을 치릅니다. 시장원리와 수강신청 시스템을 접목한 Cors라는 수강시스템을 보면서 더 이상 fast finger 제도가 최선이 아니라 다양한 방법의 수강신청제도가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Cors와 같은 기발한 아이디어의 좀 더 선진적인 방법의 수강신청제도가 우리나라에서도 나오길 기대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