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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희망이 된 경제 이야기

국내 최초 10대 미혼모 위한 나래중고등학교



지난 7월 서울 서대문구 대신동에 국내에서 처음으로 미혼모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나래중고등학교’가 문을 열었다. 중고교에 다니다 임신을 하는 여학생들이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 마칠 수 있도록 설립된 이 배움터는 미혼모 복지시설인 ‘애란원’ 안에 만들어졌다.

“그동안은 재학생이 임신하면 초중등교육법에 의거해 학교가 퇴학이나 전학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앞으로는 대안교육기관으로 옮겨 학업을 계속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교무주임을 겸하고 있는 강영실(51) 애란원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서울시 소재 학교 학생으로 임신 때문에 학업을 중단할 위기에 놓인 학생들뿐 아니라 이미 퇴학, 자퇴, 휴학 중인 학생이라면 복교 절차를 거쳐 학적을 회복한 뒤 대안학교에서 위탁교육을 받을 수 있다.

“나래중고에 다니는 학생들은 학적은 원래 소속된 학교에 두고 여기서 취득한 출결 및 성적 처리를 재적 학교에서 그대로 인정받게 됩니다.”

9월 초에 2명이 등록했던 나래중고에는 현재 5명의 학생이 등록한 상태다. 처음 등록했던 학생들 중 두 명이 중간에 학업을 포기하는 일도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원래 다니던 학교와 복학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청강생 자격으로 수업을 들으러 왔다가 떠나야 했다. 


 
지난 5월에 임신 사실을 알았던 이 학생의 경우 학교 선생으로부터 낙태를 권유받았지만 아이를 낳기 위해 자퇴를 선택했다고 한다. 나래중고를 다니면서 학업을 계속하고 싶다며 찾아온 이 학생을 위해 애란원에서 원래 다니던 학교와 접촉을 시도했지만 “우리 학교는 평생교육법에 의거 자퇴 처리되면 어쩔 수 없다”는 냉담한 대답만 돌아왔다고 한다. 이 학생은 현재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미혼모 여학생들의 학습권이 화제가 된 것은 올해 3월 국가인권위원회가 “임신을 이유로 자퇴를 강요하는 것은 명백한 인권침해이며 청소년 미혼모에게도 교육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밝히면서다.

 

임신을 해 다니던 여고에서 자퇴를 강요받았던 김수현(당시 18세) 양이 지난해 4월 인권위에 진정서를 낸 결과였다. 이후 인권위 권고에 따라 김 양은 재입학했고 같은 해 12월 딸을 출산한 뒤 여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했다.

2007년 통계를 보면 미혼모 시설 입소자 중 10대 청소년은 약 30퍼센트를 차지한다. 출산하는 19세 이하 청소년은 한 해 3천여 명에 이른다. 출산을 앞두고 시설을 찾아오는 10대 미혼모들은 대부분 임신 사실이 알려짐과 동시에 학교에서 자퇴를 요구당하거나 아예 스스로 무단결석을 하다 자퇴 처리되는 경우가 많다.

강 사무국장은 “10대 미혼모들이 학교를 떠나는 원인 중에는 아이를 입양 보내지 않고 양육하기로 마음먹은 경우 학교 졸업보다 생계유지를 위해 직업이 우선 필요해서라는 이유도 있다”고 전했다.

학교에서는 미혼모를 학생으로 원하지 않고 사회복지 시스템도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을 하지 않기에 어쩔 수 없이 학교를 떠나는 어린 미혼모들이 얻을 수 있는 직장은 저임금 비정규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실을 잘 알고 있기에 대부분의 청소년 미혼모들은 학교 졸업을 원하고 있다. 서울여대 교육복지연구센터가 2007년 청소년 미혼모들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87.6퍼센트가 학업을 지속하고 싶다고 응답했다. 
 



또한 강 사무국장은 “10대 미혼모를 도와주는 것은 이들의 무책임함, 방종을 인정하고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의 악순환으로 빠지지 않고 책임 있는 시민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고 자립 계획을 세울 여건이 안 될 때 미혼모의 재임신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혼모들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고 자립하도록 돕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빈곤층을 위한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18주까지 출산휴가를 주고 수업 일수를 인정하며 대만에서는 2년의 육아휴가를 보장하는 등 청소년 미혼모들을 교육 시스템 안에 포용하고 사회에서 스스로 설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해외 여러 나라의 추세입니다.”

최근에는 미혼모들 중 아이를 입양보내기보다 양육을 선택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애란원의 경우 1년에 80여 명이 입소하는데 이중 80퍼센트가 양육을 택한다고 한다. 그러나 나래중고에 재학 중인 학생들처럼 나이가 어린 미혼모들은 출산할 때까지 입양과 양육 사이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직접 기르는 학생 엄마들이 어떻게 학업과 양육을 병행할지 등 아직 풀어가야 할 문제가 많은 게 현실이다.

나래중고에서 수업을 받는 미혼모들은 애란원에 머물면서 수업시간의 40퍼센트는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 등 5개 과목을 배우고 나머지 60퍼센트는 예비부모교육, 자격증 수업, 진로직업교육, 영아기 육아교육 등 다양한 특성화교육을 받는다. 모성 건강과 안전한 성 관리, 피임에 대한 건강교육도 포함돼 있다.

애란원 안에 탁아소가 있어 출산 후에도 당분간 아이와 함께 생활하면서 공부할 수 있다. 중3, 고3 학생은 나래중고에서 소정의 교육을 이수하면 재적 학교의 졸업장을 받게 된다. 본래 다니던 학교로 되돌아가는 시기는 입양이나 양육 등 개인의 사정에 따라 학교와 상의해 결정한다.

현재 서울과 인천, 춘천, 부산, 울산에서 미혼모 대안교육 기관을 지정해 운영하고 있으며 교육과학기술부는 내년까지 16개 시도 교육청이 최소 1개씩 미혼모 대안교육기관을 지정하도록 할 계획이다.


출처 : 위클리공감 8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