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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문헌보관소/편지 쓰는 장관

길이 끝나는 곳에서 등산은 시작된다



최근 세계경제의 모습을 보면 빠른 속도로 침체국면이 마무리돼 가지만 아직 불확실성과 위험요인이 잠재해 있는 상황이다.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국들이 견조한 성장세를 지속하는 가운데 일본, 독일, 프랑스가 2/4분기에 (+)성장으로 돌아섰고, 미국도 3/4분기에 (+)로 전환되는 등 선진국 경제도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위기이후 세계경제의 모습은 위기 이전과는 다른 세계일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한다. 지금의 변화는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향후 큰 차이가 나게 되는 ‘격동기’인 것이다. 우리가 당면한 과제는 이번 위기를 극복하는 것뿐 아니라 변화의 방향을 제대로 읽고, 근본적인 고민을 통해 우리경제의 지향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위기 이후에 나타날 주요한 변화로 우선 세계경제질서의 재편을 꼽을 수 있다. 당장 미국이 어느 한 라이벌 국가에 의해 대체되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축소될 것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반편, G2라는 용어가 시사하듯 중국의 입지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보고서(08.11월)에서도 西에서 東으로(West to East) 경제력이 이동하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중국, 인도 등 아시아 신흥강국의 부상으로 인한 다극체제로의 전환을 예견했다.

무역환경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세계경제의 재균형화(Global rebalancing)가 경상수지 적자국과 흑자국간에 상반된 입장을 통해 국제사회의 주요한 이슈로 대두될 것이다. 또한 세계 각국이 경기침체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자국상품 우선구매, 자원수출통제 등 보호무역주의가 득세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계무역규모가 당분간 축소 조정될 거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세계경제의 성장률 하락도 예상된다. 위기 이전 오랫동안 세계경제의 고성장을 가능하게 했던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상황이 종료됐다. 위기로 인한 리스크 회피 성향으로 새로운 사업에 대한 투자가 감소하고 구조적 실업이 늘어나 잠재성장률 하락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한편, 세계 각국의 자원 및 에너지 확보 경쟁은 보다 강화될 것이다. 특히, 중국은 2조 달러의 외환보유액을 바탕으로 적극적인 자원확보에 나서왔고, 이런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안정적인 해외자원 확보에 실패하는 나라는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중국발 자원위기론까지 낳고 있다.

또한 주요국들은 위기극복과 성장잠재력 확충의 동력을 그린 테크놀로지(GT)에서 찾으려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다. 저탄소 녹색경제로의 전환은 생산비용의 구조를 변화시켜 이에 적응여부에 따라 향후 국가와 기업의 성장에 큰 격차가 발생하게 할 것이다.

이렇듯 지금 세계는 패러다임의 변화를 맞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전환기에 어떻게 적응했느냐에 따라 전환기 이후 국가간 힘의 변동이 나타났다. 지금 세계경제질서의 변화에 대비해 경제의 체질과 구조를 개선해 나간다면 우리는 이번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경제의 미래 비전은 ‘선진일류경제’로 축약된다. 이를 위해서는 신뢰를 중심으로 한 사회적 자본의 형성과 성숙한 시민자세가 필요하다. 경제는 진공상태에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토양 속에서 성장한다. 서양의 자본주의의 독일의 사회철학자 막스베버가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 이후 아담스미스는 근면ㆍ성실ㆍ자기절제 및 상호신뢰 등을 강조해 독특한 자본주의 윤리로 경제학의 역사적 뿌리를 내려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에 압축 성장을 해 온 과정에서 제도로서의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윤리적․정신적 토대가 취약했다.

2차 대전 이후 싱가폴이나 아이슬란드 같은 국가 외에는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사례가 없다는 것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사회적 신뢰라는 자산은 선진국 수준으로 채우지 못하면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법질서와 공권력을 무시하면 사회구성원 간에 신뢰가 생길 수 없는 것이다. 지금처럼 신뢰와 투명성이 부족하고 사회적 갈등이 증폭된다면 우리사회는 천민자본주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Trust’라는 저서에서 ‘신뢰’를 노동, 자본, 자원과 더불어 4번째 생산요소로 규정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사회적 자본형성과 관련해서 ‘노블리스 오블리주’는 정말 중요하다. 우리경제의 윤리적 토대를 쌓고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는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과 자기희생이 가장 기초적 토대가 돼야 한다. 내년 11월 우리나라에서 개최될 G-20 정상회의는 품격 높은 국가이미지를 세계에 전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다음으로 우리경제의 체질강화가 필요가 있다. 작년 4/4분기 글로벌 금융위기에 우리경제는 어느 나라보다도 큰 폭으로 성장률이 둔화됐다. 수출위주의 성장전략을 추진해 오는 과정에서 대외충격에 심각한 약점이 노출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수출시장과 내수시장의 확대 균형이 절실하다. 내수산업으로서 서비스업의 경쟁력 제고가 중요해진 것이다. 우리경제에서 고용의 약 70%, GDP의 약 60%를 차지하고 생산성은 선진국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서비스 산업을 그대로 두면 선진경제로의 도약은 요원할 것이다. 서비스 부문은 일자리를 늘리고 경상수지를 개선하는 동시에 대외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기회의 영역’이다.

서비스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진입장벽을 완화하고 경쟁을 통한 생산성 향상 노력이 지속돼야 한다. ‘규제는 숨겨진 세금’이라고 했다. 소수의 집단이 규제 속에서 이익을 향유할 때 결국 그 부담은 소비자의 몫으로, 우리 전 국민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다. 지금은 집단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국가경제 차원의 큰 이익을 위해 서비스 산업 선진화 방안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성장잠재력을 확충해야 한다. 요소투입의 둔화를 완화하고 인력과 자본 등 생산요소의 질을 개선하는 한편 생산요소를 효율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열심히 일만(work hard) 해서는 안되고 창의적으로 생각해야(think smart) 하는 지식기반사회의 경쟁력은 교육에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폴 크루그만 교수는 동아시아국가들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땀(perspiration)이 아니라 영감(inspiration)이 필요하다고 했다. 산업수요에 맞는 인재가 길러지도록 자율과 경쟁원리를 통해 교육제도를 개혁하는 데 우리 모두의 관심과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

또한 기후와 환경, 그리고 에너지의 시대인 21세기를 대응하기 위해서는 녹색성장 전략을 적극 추진해야한다. 녹색성장은 환경을 지키면서 삶의 질을 높이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일자리를 창출하는 새로운 성장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우리는 ‘성공의 이력’을 가지고 있고, 위기일수록 강해지는 ‘위기극복의 유전자’가 있다다. 한 때 시대 조류에 뒤쳐져 식민지를 당한 적이 있지만 지금은 해방이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몇 안되는 모범사례가 됐다. 외환위기 때의 금모으기, 태안 기름유출사고 때의 자원봉사 물결, 이번 위기의 일자리 나누기 등은 세계에 우리국민의 놀라운 응집력을 보여줬다. 또한 지금도 우리는 OECD국가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이번 위기를 극복해 가고 있다.

위기의 긍정적인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이번 위기를 통해서 우리경제의 구조적인 취약요인을 드러내고 냉정하게 평가해 대처한다면 선진일류경제로 나아가는 데 하나의 전환기적 토대가 될 것이다.

영국의 등반가 머머리는 ‘길이 끝나는 곳에서 비로소 등산은 시작된다.’고 했다. 우리경제도 이제 정해진 길의 끝에 다다르고 있는지 모른다. 진짜 등산은 지금부터이다. 우리 모두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잃어서는 안 될 것이다.  출처: 나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