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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문헌보관소/편지 쓰는 장관

여러분이 싱싱해져야 정책이 신선해집니다



기획재정부 직원 여러분

이제 곧 하계 휴가철이 시작됩니다.
지난해 리먼사태부터 따져보면, 글로벌 경제위기를 부여잡고 샅바싸움하듯 팽팽한 긴장감을 놓지 못한 것이 벌써 10개월입니다. 그동안 일과 휴식의 경계도 없이, 일상화된 야근과 주말근무에 참으로 미안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듣기좋은 소리 한번 하겠습니다.
“휴가들 다녀 오세요!”
“장관이 말로만 부조(扶助)하는 것 아니냐”며 갸웃하지 마시고,
정말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시급한 현안이 많지만, 투우장의 소처럼 전력질주하는 것은 단기레이스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쉬면서 재충전해야 여러분의 머리에 새로운 에너지가 샘솟고,
피로에 찌든 책임감과 열정도 다시 불타오르는 법입니다.
휴가 기간만이라도 여러분 모두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모처럼 좋은 시간을 보내며,
격무에 시달린 몸과 마음을 싱싱하게 만드시기 바랍니다.
잘 쉬는 것도 경쟁력입니다.

아울러 휴가와 관련해 몇가지 당부하고자 합니다.
첫째, 가급적 국내에서 휴가를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내수 활성화는 정부가 정책을 통해 뚝딱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포함한 국민 모두의 경제적 선택이 모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올 휴가만큼은 해외소비를 국내소비로 전환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합니다.

둘째, 이웃에게 정책을 알리는 휴가가 되길 바랍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얼마전 『하반기 서민정책』을 발표했습니다.
떠올려 보세요.
여러분 주위에 정책의 수혜자들이 틀림없이 있을 것입니다.
저신용자, 어린이집 못가는 영유아, 암환자, 충치 어린이, 노점상, 3자녀 가구, 국민 임대주택 입주자, 저소득층 대학생...잘 아시다시피 어려운 이웃일수록 정보 접근성이 떨어집니다.
정보를 몰라 혜택을 못받으면 안타까운 일입니다.

500만원 대출금이 누군가에게는 구명정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휴가 기간 동안 지인 몇명에게라도 “이런 거 알아?”라고 이야기하는 자세에서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가 시작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녹색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세계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그린레이스’를 벌이고있으며, 다행히 한발 앞선 우리에게 녹색은 이제 일자리이고, 국가발전 패러다임이고, 미래입니다.

셋째, 멀리 보고 길게 호흡할 준비를 해달라고 부탁하겠습니다.
우리경제의 빠른 회복에 대한 대내외적인 기대감이 커지고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은 일부 수치만 나아지고있을 뿐입니다. 특히 재정 확대를 통한 소비침체 억제와 생계형 일자리 창출은 오래갈 수 없는 정책입니다.
투자활성화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성장동력 확충이 재정정책의 바통을 이어줘야합니다. 투자는 그 자체가 내수이고, 성장동력이고, 일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대내외적으로 경제회복 신호가 오는 지금이야말로 정부나 기업이나 선즉제인(先則制人), 즉 “남보다 먼저 도모하면 능히 남을 앞지를 수 있다”는 말을 되새겨볼 시기입니다.

기획재정부 직원 여러분
상반기에 희망근로같은 한시적인 생계형 일자리 대책을 추진하면서 저는 신사광부(紳士鑛夫)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여러분 중에는 아마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않을 겁니다.
민간이든 정부든 일자리를 만들어낼 능력이 없던 60년대에, 정부는 국민들을 독일 탄광에 취업시키기로하고 광부를 뽑았습니다.수천명이 지원했고, 치열한 경쟁끝에 최종 합격한 몇백명의 명단이 마치 고시 합격자처럼 신문에 실리던 시절이었습니다.



대졸 학력이 정말 흔치 않았음에도 많은 합격자가 대졸이었고, 그래서 언론은 그들을 신사광부, 인텔리광부라 불렀죠. 가난한 자기 나라에서 일자리를 못구한 대졸자들은 탄광에서 몇개월씩 광부 교육을 받고 독일로 떠났습니다. 경제기획원 간부가 인솔했던 것으로 기억납니다. 온 나라는 안타까움과 부러움으로 그들을 전송했습니다. 정부와 민간의 일자리 창출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가슴아픈 기억입니다. 

기획재정부 직원 여러분
하반기에는 우리 기획재정부가, 한국경제가 맞닥뜨릴 여러 글로벌 리스크를 미리 감지하고, 선제적으로 관리하도록 노력합시다.
특히 경제심리를 관리해 불확실성을 걷어주는 작업을
하반기 여러분 업무의 우선순위에 놓아주십시오.
소비든 투자든 경제주체가 불확실성을 우려해 결정을 유보하거나 상황변화만 기다린다면 정책이 효과를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항상 현장과 호흡하고, 상황을 장악하고, 핵심에 집중하는 업무태도를 다시 한번 주문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제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듯한 마음이 정책에 녹아나는 하반기가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사랑하는 기획재정부 직원 여러분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아울러 남편이나 아내, 혹은 아빠나 자식의 주말과 밤시간을 늘
기획재정부에 빼앗겨야했던 직원 가족 여러분,
참 많이 미안합니다.
또 고맙습니다.
휴가들 잘 다녀오십시오.


2009.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