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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문헌보관소/<인터뷰>경제톡톡(Talk Talk)

쉰셋에 미국 변호사 합격한 비결은?


김병배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의 현재 직함은 미국 로펌 ‘손시니 굿리치 앤드 로사티(Sonsini Goodrich & Rosati)’의 수석 고문변호사(Senior Counsel for International Business Affairs)다. 지난해 4월, 56세로 공정위에서 퇴임한 김 부위원장은 이전에 퇴임한 어느 공직자도 선택하지 않았던 길을 찾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년이 지난 지금, 미국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병배 변호사에게 ‘인생 2막’의 비법을 물었다.

지난해 공정위 퇴직하고 미국 로펌으로 가면서 큰 화제가 됐었는데 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미국 로펌의 변호사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고객인 미국 기업들을 방문해 사내 변호사들과 얘기도 하고, 미국 법원에 특허 침해 등을 이유로 제소당한 한국 기업들을 위해 자문도 하구요. 바쁘게 지내고 있어요.

근무하는 ‘손시니 굿리치 앤드 로사티’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 주십시오.
변호사 700명 규모의 대형 로펌입니다. 본사는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 밸리 북부에 위치한 팔로 알토(Palo Alto)에 있고 워싱턴 D.C., 뉴욕, 중국 상하이 등에 지사가 있어요. 본사가 있는 실리콘 밸리 지역의 IT 기업들이 주요 고객입니다. 고객들에게 기업 공개, M&A, 공정거래, 특허 침해, 민ㆍ형사 소송 등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 최고 수준의 로펌이지요.

은퇴 후 국내에서 편히 지낼 수도 있는데 굳이 미국으로 간 이유는 무엇입니까?
앞으로 법률시장이 개방되면 대형 외국 로펌들이 국내에 진출할 겁니다. 그 때를 대비해 외국의 대형 로펌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 지 현장에서 보고 싶었습니다. 또 제가 미국 변호사 자격이 있어요. 법률시장이 개방돼 미국 변호사가 국내에서 활동하려면 미국에서 개업한 경력이 필요하다고 해서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그 경험을 쌓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왔지요.

미국 로펌에 취업하기가 만만치 않았을 텐데 준비는 어떻게 하셨나요?
미국 변호사 자격이 있고, 한국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오랜 실무 경험이 있어 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특별히 준비한 건 없어요. 다만 미국에서 일하려면 취업비자를 받아야 하는데 그게 시간이 좀 걸렸죠. 다행히 우리 로펌에서 이민전문 변호사를 연결시켜 줘 비자 받는데 별 어려움은 없었어요.

업무내용과 분위기를 한국 로펌과 비교한다면?
업무 내용은 한국과 비슷합니다. 다만 미국 기업들은 거래 초기 단계부터 로펌의 자문을 받아 가능한 모든 경우에 대비해 계약서나 제안서를 매우 꼼꼼하고 자세히 작성합니다. 나중에 당사자 간 이견이나 법률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적지요. 그에 비해 우리 기업들은 상세한 법적 검토 없이 계약서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중에 계약 내용에 불분명한 부분이 나타나 법적 분쟁이 발생해 소송으로 가고, 그 결과 많은 소송비용이 발생하고, 기업경영에 중대한 위협이 되는 경우가 많지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계약서에는 보통 ‘계약 내용에 이견이 있을 경우 양 당사자가 신의ㆍ상실의 원칙하에 합의하여 처리한다.’ 같은 포괄적인 분쟁해결 조항이 있습니다. 이런 조항은 사실 사전에 계약서를 충분히 검토해서 상세히 작성하면 필요 없거나 있더라도 형식적인 조항이 되지요. 하지만 계약서가 불충분하게 적성되면 결국 이런 조항에 근거해 분쟁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당사자 간에 해결이 매우 어렵습니다.
미국 로펌은 매우 ‘Bisiness-oriented’된 것 같아요. 고객 개발이나 고객 서비스 등 로펌의 비지니스와 관련 없는 사항에는 관심도 없고 매우 차갑고 냉정합니다. 한국 로펌은 그래도 인간적인 배려가 있는 것 같은데요.

그곳에 간 것을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 좋은 경험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미국 로펌들의 운영 행태도 보고, 한국 법률시장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도 하구요. 또 이곳 변호사들은 나름대로 최고 엘리트들입니다. 이들과 함께 토의하고 사귀는 것 자체가 좋은 경험이죠.

미국 파견기간 중 법학을 공부하셨더군요. 전공이 경영학인데 뒤늦게 법학에 관심을 가진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공정위에 근무하다 보니 업무상 법적 소양이나 지식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경제법은 물론이고 민법, 상법, 형법 등 관련 공부를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하고 관심도 계속 갖고 있었죠. 하지만 법률공부를 제대로 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전윤철 전 감사원장님 때문입니다. 그 분이 공정위 위원장으로 계실 때 법률 지식을 많이 강조하셨어요. 심지어 법 전공을 안 한 사람은 좀 우습게 보는 것 같기도 하더라구요. 그래서 자존심도 상하고 ‘법 공부가 별거냐?’는 오기도 생겨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등록해서 공부했습니다. 2002년 미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경쟁협력관으로 근무할 기회가 있어 내친김에 조지타운대 로스쿨에 등록해 석사과정(L.L.M.)을 마쳤지요. 낮에는 일해야 했기 때문에 강의를 주로 야간에 듣는 바람에 2년 정도 걸렸습니다.

그곳에서 김 부원장을 채용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희 로펌의 고객들은 주로 구글이나 이베이, 샌디스크 같은 IT 기업입니다. 이들은 한국의 IT 기업이나 산업에 관심이 많아요. 또 한국 공정위가 최근 마이크로소프트나 인텔 같은 외국 IT 대기업에 대한 조사를 많이 하니 저의 경험이나 경력이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듯 합니다.

공직 기간 내내 경제기획원과 공정위에만 계셨더군요.
경제기획원에는 수습사무관 끝나고 지원을 해서 과장 시절 잠시 국무총리실에 파견 나갔던 것을 제외하고는 계속 있었습니다. 94년까지는 공정위가 경제기획원 산하의 한 실 또는 국이었기 때문에 왔다 갔다 했거든요. 94년 공정위가 경제기획원에서 분리ㆍ독립할 때, 내가 마침 공정위에 있어서 공정위에 그냥 남게 되었죠.

공직기간 중 ‘이건 정말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습니까?
2005년 공정위에서 미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해 심판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담당국장으로서 주 심사관이었죠. 유능하고 열정적인 부하직원들과 함께 그 사건을 분석해 심사보고서와 후속 분석보고서를 만들고, 공정위 심판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쪽 변호사들과 치열한 공방을 거쳤습니다.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불공정거래행위가 한국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는 판정을 이끌어 냈죠. 그 판정이 법원에서도 그대로 지지되었구요. 아직까지 가장 인상에 남는 일입니다.

가장 보람 있었던 때를 꼽는다면?
1995~96년에 총괄정책과장 때 공정거래법 개정의 실무 주역을 맡았습니다. 재벌 계열사 간 채무보증을 금지시키고 공정위를 중앙행정기관으로 격상시키는 내용의 법 개정을 했지요. 당시 재정경제원, 산업자원부, 법무부, 행정자치부 등의 반대가 많아 치열하게 사전 협의하고 거의 싸우다시피 해 통과가 되었어요. 그 때 김인호 위원장님을 비롯해 저를 믿어주신 좋은 상사들과,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저를 따르던 부하 직원들과 함께 의기투합해서 일했던 기억이 잊히지 않습니다. 공무원은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과 좋은 부하를 만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인데, 그 때가 그런 시절이었죠.



최근 정부에서 기업 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규제의 정도는 어느 정도이며, 규제개혁에 가장 우선을 둬야 할 분야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공무원들은 걱정이 많아서 뭔가 정부가 규제를 해야 경제가 발전하고 소비자가 보호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사회적 비용이나 부작용, 또는 규제의 목적달성 가능성 같은 것은 외면하고 긍정적 측면과 기대효과만 아전인수 격으로 고려해 규제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지요. 소비자나 피규제자의 입장보다는 공급자나 규제를 통해 이익을 보는 집단 입장에서 규제를 도입하는 경우도 많구요.
하지만 미국에서 일해 보니 나라 발전을 위해선 역시 민간 부문, 특히 기업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이곳에서 대한민국의 국가 이미지와 국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것은 정부가 아니라 삼성, LG, 현대, 포스코 같은 대기업이더군요. 그래서 우리 대기업들이 자유롭게 세계로 진출하고 활동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규제개혁 분야에서 할 일이 매우 많아 보입니다.
정부는 국방, 법질서 유지, 안전, 건강, 사회보장 등 민간이 할 수 없는 분야의 서비스만 제공하고, 나머지 민간부문에서 스스로 제공할 수 있는 분야는 민간이 시장에서 경쟁과정을 통해 제공하도록 각종 규제를 풀어 줘야 합니다. 정부는 시장질서의 감시ㆍ유지자로서의 역할만 해야 기업의 창의가 촉진되고, 혁신도 일어나고, 기업의 효율성과 경쟁력도 제고된다고 봐요. 경쟁을 제한하는 규제는 원칙적으로 철폐돼야죠.

퇴직하면서 직원들 복지를 위해 퇴직금 일부를 기부하셨습니다. 그것도 당시 큰 화제가 됐었는데 그렇게 한 특별한 이유는?
공정위를 떠나면서 생각해 보니 제가 공정위나 후배 직원들로부터 너무 많은 사랑과 도움을 받았다는 생각과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또 그걸 계기로 제 후에 퇴직하는 다른 후배들도 참여하고, 이런 것들이 쌓여 공정위 직원들에게 조금이나마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대했어요.

가족과는 떨어져 지내시나요? 근무시간 외에는 어떻게 보내십니까?
미국에서 일 할 때는 주로 혼자 지냅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많은 편이죠. 제가 DVD 보는 걸 좋아 해요. 시간이 나면 영화나 오페라, 뮤지컬, 콘서트 DVD를 많이 봅니다. 또 운동도 좋아해요. 특히 나이가 들면서 자꾸 체중이 늘어 체중 조절을 위해서 운동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일주일에 3~4번 정도 헬스클럽에 가서 달리기를 해서 땀을 빼고 체조도 하지요. 업무상 또는 친구들하고 가끔 골프도 치구요. 주말엔 교회 성가대에서 찬양도 드리구요.

언제까지 그곳에서 일할 예정입니까?
가능하면 여기서 좀 더 일하다가 국내 로펌으로 가고 싶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한국이나 외국 기업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 미국도 경제 사정이 안 좋아 변호사를 대량 해고하는 경우도 많고, 아예 파산 신청해 문 닫는 곳도 있어요. 저도 고용된 변호사이기 때문에 로펌에서 나가라 하면 나가야겠지요. 민간 분야의 불확실성이나 근로자의 종속성을 현장에서 제대로 경험하고 있습니다. 공무원 시절의 안정성이나 예측가능성은 없지만 새로운 시각에서 사물을 보고 사람을 만나고 느끼고 배우면서 나름대로 즐기고 있어요.

존경하는 선배는?
공정위 위원장으로 모셨던 김인호 전 경제수석과 전윤철 전 감사원장님, 그리고 제가 사무관 시절 과장으로 모셨던 장승우 전 해양수산부 장관님을 존경합니다. 그분들은 일에 대한 열정, 소신과 추진력이 있었고 후배나 부하들을 믿고 이끌어 주셨어요. 한마디로 같이 모시고 일하고 싶은 좋은 상사, 배울 것이 많은 상사였지요. 특히 김인호 전 경제수석은 제가 사무관 시절부터 과장에 이르기까지 다섯 번이나 상사로 모셨던 인생의 스승입니다.

공정위 직원들이 꼭 인터뷰 해달라고 요청하더군요. 직원들이 닮고 싶은 선배, 존경하는 상사로 꼽던데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밖에 나와 보니 공무원들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세상만 보고 밖의 사회 변화나 기술 발전을 못 따라 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꼈어요. 공무원이 국가발전을 위해 기여하려면, 소극적으로는 걸림돌이 안 되려면, 사회 변화나 기술 발전을 앞서가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뒤쳐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꾸준히 공부하고 업무관련 정보나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겠죠.
내가 공무원 생활을 시작할 때만 해도 도중에 민간 부분으로 전직하거나 자의로 그만 두는 것은 거의 생각을 못 했어요. 하지만 요즘은 민간과 공공 부문 간 이동성이 높아졌을 뿐 아니라 권장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공무원만이 오직 나의 길’이라는 경직된 생각을 버리고 필요하면 민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유연한 생각으로 준비하고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선 계속 자기계발을 위해 투자하고 노력해야겠죠.

아무리 여건이 어려워도, 나이가 많아도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기 바랍니다. 내가 미국에서 변호사 시험을 볼 때가 53세였어요. 가진 것도 별로 없는 내가 공무원을 그만둬도 먹고 살 거리를 마련하기 위해선 경쟁력을 키워야 할 것 같아서 아들ㆍ딸과 비슷한 또래의 젊은이들과 섞여서 공부하고 변호사 시험 준비학원도 다녔어요.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늦었다고 포기하지 말고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면 기회가 반드시 옵니다. 기회는 준비한 사람만이 잡을 수 있거든요.

                                                                                                         인터뷰 공은주 나라경제 기자 
                                                                                                               사진 제공 김병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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