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루마블 문헌보관소/<인터뷰>경제톡톡(Talk Talk)

[농사 지어도 벤츠 타고 장학금 줍니다] 김용복 영동농장 창업주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란 "사회지도층의 의무"를 의미한다. 보통 부와 권력, 명성은 사회에 대한 책임과 함께 해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즉, 사회지도층에게 사회에 대한 책임이나 국민의 의무를 모범적으로 실천하는 높은 도덕성을 요구하는 단어이다.

부자라면 가진 재산을 자식들에게 모두 남겨주는 것이 당연한 듯 느껴지는 요즘 세태에 현대판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 흙농사로 이룬 부(富)를 사람농사, 사랑농사에 환원하고 있는 영동농장 김용복 회장이 바로 주인공이다. 
 


어렸을 적 배우고 싶지만 돈이 없어 힘든 시절을 보냈던 김 회장은 자신과 같이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야겠다는 꿈을 가졌고 1982년 처음으로 사재 10억원을 출연하여 용복장학회를 설립, 그간 수많은 장학생을 배출해 왔다. 이 학생들은 현재 회계사, 판사, 의사, 교수가 되어 우리 사회를 이끄는 인재로서 장학회를 빛내주고 있다. 또 2003년에는 아무런 대가없이 100억원을 출자하여 한사랑농촌문화재단을 설립해 농업과 농촌사랑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를 마련했다. 이미 각종 언론을 통해, 녹색의 신화로 알려진 김용복 회장.

과연 그의 저력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인터뷰를 통해 들어봤다.

▶ 블루오션, 남에게 없는 2%를 찾아라! (즉, 내 안의 2%를 찾는 것!)

비 한방울 내리지 않고 섭씨 40도의 불모지 사막. 그곳에서 배추와 무를 재배한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김용복 회장이다.부산에서 미군부대 하우스보이로 일하면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할 수 있었고,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의 미국계 회사에서 일하게 된 김 회장은 그곳에서 기발한 생각을 가지게 된다. 연일 한국기업들의 사우디아라비아로의 진출 소식을 접했고, 김치 없이 못사는 한국인들에게 현장에서 직접 김치를 공급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우디 정부를 찾아가 현지서 농사를 짓고 싶다고 했고, 당시에는 농사짓는 사람이 없어 사우디 정부에서는 반가워했다고 한다. 사우디 정부의 지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했던 것도 성공의 비결!!

그래서 1979년, 사우디아라비아 현지서 영동농장을 창업하게 된다. 계속된 실패에도 거듭 도전했고 미세먼지와도 같은 사우디 사막의 특성을 연구, 계분(닭똥)을 섞어 밭을 개간하고 지하수를 이용하여 결국 배추와 무를 재배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고추, 마늘 등 16종에 이르는 작물을 재배,?한국인의 우수성을 알려야겠다며 떠난 사막에서의 성공으로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 초반까지 개인으로서는 가장 많은 외화를 벌어들였다고 한다.

▶ 젊은이들이여! 꿈을 가져라!


김용복 회장은 가난에 중학교 공부를 잇지?못하고 설움을 안고 객지로 나갔다. 성공하기 전까지, 빈농이었던 아버지에게 많은 논을 사드리기 전까지 고향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마음가짐과 무언가를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와 부지런함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다. 배고픔과 배움에 대한 굶주림, 또한 가족에 대한 사랑이 그리웠던 김 회장은 현재 12명의 가족을 둔 부자로 거듭났다. 


주말이면 가족들을 한자리에 불러 함께 시간을 보내고 방학이면 어김없이 모든 가족이 동반 여행을 한다. 이렇듯 김 회장은 국제화 시대를 살아가는 자식들의 견문을 넓히는 중요한 수단으로써 여행을 꼽았다. 세계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몸소 체험해야 하며 더불어 영어 또한 필수적 자질로써 강조했다.


이어 본인만의 꿈이 생기면 인생을 단기적으로 보지 말라고 당부했다. 5년~10년 후에 내가 무엇을 이룰지를 생각하고 미래를 위해 달려주기를 바란다고 했다. 30~40대 까지는 준비하는 기간, 70대까지는 성취하는 기간, 그리고 그 이후는 사회에 환원하는 기간으로 보고 혜안을 갖고 인생설계를 하여 살아가야 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농업인으로서 김 회장은 농업에도 얼마든지 길이 있음을 피력했다. 청년 실업 100만인 시대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힘든 일은 기피하고 돈을 쥐어줘도 농촌으로 들어가지 않으려 한다며 세태를 꼬집었다. 똑똑한 청년들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농사로 성공할 수 있으며 주변에 성공해서 벤츠, 에쿠스 타고 다니는 농사꾼도 있다고 했다.?김용복 회장은 또한 한국농업대학교의 운영위원으로서도 도움을 주고 계신데 여기에는 오로지 농업에만 뜻이 있는 젊은이들로 구성이 되어 정부에서는 이들에게 창업지원까지 해주고 있다고 한다.

블루오션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사양화 된 산업이 다시 각광을 받을 때 비로소 그곳이 여러분의 자리라며 농업이 중요한 역할을 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확신했다. 현재 회계사, 변호사 등 각광받는 직업에만 몰두하여 세월을 탕진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깝고 농업에 대한 인식 변화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 도전하고 실천하라!

친환경농법으로 생산한 그린음악쌀 김용복 회장은 아들인 김태정 영동농장 총괄사장에게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를 졸업하고 현재 전남대에서 미생물학 박사과정을 수료중인 아들 김태정 사장에게서는 미래의 영동농장의 모습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영동농장은 예전의 물량위주의 대량생산에서 고품질을 추구하는 대량생산으로의 전환을 꿈꾸고 있다. 현재 J&K미생물학연구소를 운영, 친환경 농법으로 농장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성공사례 중 한 예는 바로 그린음악쌀이다. 논에 오리를 풀고 벼가 모짜르트나 아리랑 등 풍악을 들으면서 자라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수확된 벼는 시세의 2배를 받을 수 있다. 작년 한해에는 1만3천석을 거두었으니 벼에서만 1년 매출이 수십억원이 넘는다.

김태정 사장은 현재 영동농장의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인력과 땅이 부족한 한국보다는 러시아와 브라질 등을 새로운 보금자리로 삼을 계획이며 마찬가지로 현지의 제반사항과 추후 중요한 수송에 대한 문제들도 꼼꼼히 고려하고 있다. 쌀은 우리의 기초식량인 동시에 자급도가 98%에 이르고 있지만 우리가 먹는 자포니카 타입의 쌀은 한국과 일본만이 소비하는 특수 작물이다. 따라서 생산되는 지역도 전 세계에서 극히 일부이고 쌀 자급도를 지금처럼 유지하지 못한다면 미래에 있을 식량 위기에 대처하기가 어렵다. 김태정 사장은 이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미래상을 구현시켜 나가고 있다.
 
가업을 잇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님에도 김태정 사장은 묵묵히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가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김용복 회장은 참으로 아들에게 고마워하며 아끼지 않는 성원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만나본 김용복회장은 인터뷰 내내 77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활동적이었다. 자신을 원하는 곳이라면 장거리 지방강연도 마다하지 않는다. 앞으로 남은여생은 모두 사회를 위해 보낼 생각이시다. 흙 농사, 사람농사, 사랑농사를 짓는 그는 우리가 아는 진정한 대한민국 최고의 농부였다. 멋쟁이 회장님~ 오래오래 사시고 좋은 일 많이 해주세요.^^

취재 및 사진 : 기획재정부 블로그 기자단 1기 염혜원, 송승록

                         이 정보가 유익하셨다면 <몬이의 블루마블>을 구독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