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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세계의 경제 이야기

중세시대 경제활동, '대항해시대'를 찾아

본문에 들어가기 앞서 독자 여러분에게 간단한 문제를 내겠습니다.

 

Q)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을 탈 때 이 도구를 통해 업무 메일을 확인 할수 있고, 각종 경제 스포츠 뉴스를 볼 수 있고 영화를 즐길수 있습니다. 친구들과  게임도 가능하며, 공부도 할수 있는 각종 활동들은 손바닥 크기에서 이루어 집니다. 이 도구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정답은 스마트폰입니다.

 

스마트폰은 우리의 많은 생활 양식과  경제생활에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발명은 지구를 촌으로 만들었으며, 스마트폰의 발명은 이 지구촌을 더 밀착을 가속화 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웬 스마트폰 얘기냐고요? 우리에게 많은 변화와 혁신을 가져온 '스마트폰' 같은 이야기가 먼 옛날에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지리적인 발견을 통한 변화와 혁신, 중세 '대항해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대항해시대를 열었던 향신료

 

중세 유럽인들의 식탁 음식은 어땠을까요? 변변한 저장 기술이 없었던 유럽인들은 소금에 절인 생선이 주식이었습니다. 이 악취나는 음식은 향신료가 없이 먹기 매우 어려웠습니다.

 

향신료의 주 원산지는 동양이었으며, 대부분 아랍상인들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향신료의 가치가 폭등하는 날에는 1온스(25g)가 평민 연봉 1년치의 가격으로 거래 되기도 했습니다.

 

중세시대 유럽인들에게 향신료가 생산되는 동양은 금은 보화의 나라로 인식되었으며, 마르크폴로의 동방견문록의 출간으로 그 궁금증은 더욱 커져갔습니다.

 

이때 신성 로마제국의 멸망과 함께 등장한 오스만투르크의 동방무역의 방해로 동방으로 가는 직 항로를 개척하자는 움직임이 나타나게 됩니다.

 

항로 개척에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였던 나라는 신생국가인 스페인과 포르투칼이었습니다.  당시 동방 무역을 주도 했던 베네치아와 제노바가 유럽의 중심이었으며,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이들 국가는 변방에 불과했습니다.

 

 

 

 

지리의 발견과 유럽의 패러다임 변화

 

이들 신생국가들의 모험은 일반 사람들이 보기에 매우 무모해 보였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어의 세계관은  그리스도 교리에 입각한 '천동설'을 믿고 있었는데, 지구는 네모나고 평평하며 그 끝에는 세상의 끝이 있어 긴 폭포에 떨어져 죽는 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코프르니쿠스의 지동설 제기(지구는 둥글다)와 항해 기술의 발전 그리고 앞서 이야기 했던 시대적인 배경과 함께 신생국가들의 지리적인 개척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개척의 신호탄은 신생국가 포르투칼 왕자 '엔리케'였습니다. 당시 적도의 바다를 지나면 태양에 타서 죽는다는 세간의 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한 탐험대 파견으로 적도 항로를 건널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죠. 그 후  바르톨로뮤 디아스 탐험함대는  아프리카의 최남단에 도달 희망봉을 발견(1488년)했고, 약 10년 뒤인 1497년 바스코 다가마에 의해 인도항로를 개척 하게 됩니다.

 

이와는 다르게 스페인은 인도 항로를 개척하지는 못했지만,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1492)하게 됩니다.

 

 

 

 

 

이들 국가는 지리적 발견을 토대로한 무역과 신대륙의 금광 발견과 개척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되는데, 특히 스페인은 축척한 부를 토대로 함대에 투자하게 되며, 이 함대는 무적 함대라는 별명으로 유럽 국가의 공포 대상이 됩니다.

 

 이와는 반대로 베니치아와 제노바는 동방무역의 쇠퇴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며 유럽의 패러다임은 동방의 교역품과 아프리카 토착품, 신대륙의 교역품이 모이는 스폐인과 포르투칼로 옮겨갑니다.

 

'대항해 시대'와 가격혁명

 

 대항해 시대에서 지리적 발견은 그 이상으로 유럽에게 파급력을 주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유럽에 깊게 뿌리 밖힌 기독교적 세계관의 동요입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엔 지리적 발견을 통해 가진 자신감 합리주의가 대신하게 됩니다. 이 합리주의는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수 있다는 행동 정당화로 작용해 제국주의로 발전하게 됩니다.

 

 둘째로 유럽에 가격혁명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신대륙의 금광 발견과 무역으로 막대한 금이 유럽에 들어오게 되면서 기존의 금 시세가 대폭락 하게 됩니다. 화폐가치의 대폭락으로 유리한 계급은 어떤 계급일까요? 물건을 가진 상인과 생산 업자 그리고 독립 농업인이었습니다. 이들의 자본과 힘의 축척은 유럽의 사회 질서가 변화하는 혁명의 도화선이 됩니다.

 

 

 

                                         대항해 시대에 유입된 금과 함께 폭등한 물가

 

 

'대항해 시대'를 통해 지리적 발견이 우리가 생각했던 이상의 파급효과가 일어나고 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지리적인 발견과 새로운 문화와 교역, 그리고 이를 통해 들어온 물건들은 유럽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생활 뿐만 아니라 가까운 미래 경제적 사회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마치 21세기 변화와 혁신의 산물인 스마트폰이 우리의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것처럼 말이죠.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당장의 혜택과 함께 그것이 몰고올 파급력과 또한 그것으로 형성될 문화와 정치적 변화를 미리 그려 본다면, 복잡한 21세기 경제를 좀더 수월히 이해 할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