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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문헌보관소/FTA시대를 사는 사람들

한·미 FTA와 우리의 관광산업


한·미 FTA 발효와 함께 우리 관광산업은 또 하나의 계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이기보다는 다른 산업의 개방으로 인한 간접적인 영향이 예상된다. 관광 선진국 미국을 배우고, 미국과 경쟁하기 위해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을 생각해 보았다. <글 | 최병일 머니투데이 기자·사진 | 한국관광공사, 한국방문의해위원회>


<우리 관광지 가운데 서구인들을 매료시키는 불국사>


'미국, 어디까지 가봤니?' 4년 전 대한항공에서 미국 여행을 타깃으로 한 TV광고를 방영한 적이 있다. 한효주, 이완 같은 유명 탤런트가 미국의 주요 관광지를 소개하는 광고를 보며 많은 사람이 미국의 관광지가 그처럼 다양한지 처음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많은 사람이 미국 하면 자유의 여신상, 영화의 무대로 자주 노출되는 뉴욕 42번가, 디즈니랜드, 라스베이거스 정도를 여행지로 떠올린다. 광고에서 소개된 증기 열차를 타고 붉은 단풍이 우거진 산을 가로지르는 모습이나 서부 센타페이의 이색적인 풍광을 보며 낯설게 느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여행 기자나 여행 작가로 세계 여러 나라에 가 본 필자의 지인 중에서도 실상 미국 여행을 제대로 해 본 이는 많지 않다. 기껏해야 라스베이거스 관광청 초청으로 카지노 산업과 관련한 팸 투어를 가거나 뉴욕,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같은 특정 지역만 다녀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미국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동맹국이자 교류국이지만 우리는 미국의 관광지, 관광시장 인프라에 대해 잘 모른다. 최근 한·미 FTA 발효를 눈앞에 두고 있다. 앞으로 한·미 간 새로운 무역질서가 펼쳐질 것이다.


<우리 관광지 가운데 서구인들을 매료시키는 비무장지대>


다양한 국제회의 개최로 방문객 늘 것

한·미 FTA가 내년부터 발효된다고 해서 당장 여행시장이 요동칠 만큼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한·미 FTA가 국내 관광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 등 관광 관련 주요 기관은 수년 전부터 ‘큰 영향이 없다’고 밝혔다. 2004년 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에서 이미 개방이 이뤄졌기 때문에 FTA가 발효된다고 해도 특별한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여행업계는 관광산업의 폭이 넓고 다양하기 때문에 한·미 FTA 협상이 체결된 후 다른 산업의 개방으로 인한 영향이 관광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두 나라 간 교류협력과 개방의 부산물로 다양한 국제회의가 개최되고 방문객이 증가할 것으로 보여 관광산업 면에서는 오히려 시장의 폭이 넓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 3년 동안 두 나라 간 방문객 수는 해마다 두 자릿 수 이상 증가하고 있다. 미국을 방문하는 한국인은 지난해 110만7,518명으로 2009년 90만6,006명보다 22%가량 증가했다. 한국인들의 미국 방문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시행 3년째에 접어든 비자면제프로그램(VWP)이 정착돼 미국 여행이 한결 쉬워졌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원화 환율의 등락폭이 들쭉날쭉하고 내수시장 침체라는 불안요인이 있지만, 한국인의 미국 관광 수요는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일본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로 미국을 많이 방문하는 나라다. 전체 방문객 중에서 8위권에 해당하는 주요 국가다.

미국인의 한국 방문객 수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법무부 출입국사무소 외국인 방문객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0년 미국인의 한국 방문객 수는 65만2,889명이다. 이 가운데 비즈니스나 연수 등 기타 사유를 제외한 순수 관광객은 47만5,886명으로 73%에 이른다. 미국인 방문객이 우리나라 관광시장에서 차지하는 순위도 일본과 중국에 이어 세 번째다. 그만큼 양국 사이에서 관광 교류는 주요한 이슈다.


한국 방문하는 미국인 꾸준히 늘어

잘 알려져 있듯 미국은 전 세계 관광산업을 선도하는 관광대국이다. 미국을 방문하는 해외 관광객 수는 2010년 기준으로 5,970만 명에 달한다. 이는 전 세계 순위로 프랑스(7,680만 명) 다음으로 많은 수치다. 관광수입 면에서는 1,035억 달러로 2위인 스페인(525억 달러)과 3위 프랑스(463억 달러)의 수입을 합친 액수보다 많다.

미국이 다른 어떤 나라보다 관광산업이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관광 인프라가 잘 구축돼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관광자원은 크게 자연자원과 자본주의의 발달사라고 말할 수 있는 현대적 건축물로 볼 수 있다. 그랜드캐니언이나 옐로스톤, 요세미티 등은 모두 국립공원이다. 이들 공원은 ‘자연을 자연 그대로 관리한다’는 정신 아래 수천 년을 이어온 원시 자연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전 세계 관광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이유다. 디즈니랜드나 유니버설스튜디오 같은 테마파크는 이미 일본이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로 수출된 프랜차이즈 관광상품이다. 사막에 세운 인공적인 관광자원 라스베이거스는 물론 미국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워싱턴, 뉴욕의 고층 빌딩 또한 경이로운 볼거리들이다.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 등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미국은 그야말로 관광자원의 천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관광 인프라의 주요한 축이 되는 교통(항공 포함)은 물론 숙박시설 서비스도 잘 정비돼 있다. 한국관광공사 해외마케팅 자문위원 웨슬리 김씨는 “미국은 도로망이 잘 발달돼 자동차로 여행하기 편리할 뿐 아니라 항공편은 최근 유류 인상 등으로 요금이 올랐지만 물가 상승률을 고려할 때 미국 항공사들의 요금은 오히려 16% 낮아졌다”고 말했다.

웨슬리 김씨는 또 “숙박의 경우 미국의 호텔 객실 점유율은 평균 58%며 2011년에는 59%로 상승할 전망이다. 객실 점유율이 60%를 넘지 않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행사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 호텔 객실이 부족할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성수기 바가지 요금이나 객실난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처럼 관광에 필요한 인프라가 두루 구축돼 있기 때문에 미국 관광업계는 상대적으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굳이 홍보하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오는 여행객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광 홍보나 마케팅에 아예 무심한 것은 아니다.



미국, SNS사이트 통한 마케팅 주력

미국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간 협력에 주안점을 두고 다양한 관광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미국의 관광행정기구는 연방정부와 상무성 각주 관광국으로 구성돼 있고, 캘리포니아, 버지니아, 오하이오, 미시간 등 각주 관광청이 전 세계에서 미국 관광자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최근 뉴햄프셔주나 인디애나주 등에서는 소셜 네트워크 시대에 걸맞게 스마트폰 앱을 개발해 앱스토어에서 무료로 보급하거나 페이스북, 트위터 등을 통한 소셜 마케팅에 주력하고 있다.

미국의 잘 정비된 관광 인프라와 정책은 1,000만 외래 방문객 수용을 눈앞에 둔 우리나라 관광업계가 배울 만하다. 국토가 좁고 관광자원이 한정돼 있어 관광산업의 발전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일부 있지만 실제 미국 여행업계 종사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SITA 월드 투어의 루디 아노우 부사장은 “한국이 물가 수준이 높고 비용이 많이 들며 관광자원이 한정돼 있다는 지적은 일부 타당성이 있지만 틀린 부분도 있다”며 “놀라운 경제성장과 관광 인프라가 대단히 세련돼 있다는 점을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노우 부사장은 “관광지의 쇼핑 환경이나 다양한 문화재 등이 세계 어떤 나라와 비교해 뒤지지 않으며 전통적인 것과 현대적인 것이 잘 어우러져 발전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말했다.

관광은 규모가 전부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나라보다 국토가 좁은 홍콩이나 도시국가 싱가포르가 세계적 관광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자국 관광자원을 최대한 부각시켰기 때문이라고 아노우 부사장은 강조했다.

미국인을 포함한 영미권 관광객을 더 많이 유치하고 규모를 확대하려면 여행객들이 어떤 여행지에 매력을 느끼고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관광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한경아 한국방문의해위원회 마케팅본부장은 “우리의 잣대로 미국인 관광객의 관광욕구를 파악해서는 안 된다”며 “미국인들은 우리나라에서 대단히 한국적인 요소, 즉 한국에만 있는 풍경과 한국의 맛, 한국인의 정서를 느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불국사·석굴암에 매료되는 미국인들

한국인들에게는 수학여행지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불국사나 석굴암에 미국인을 비롯한 서구인들이 매료되는 것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보기 어려운 독특한 한국적 양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경아 본부장의 말이다.

“예를 들어 중국에도 절이 있고 일본에도 절이 있지만 같은 절이라고 해도 각각의 형태가 다릅니다. 중국의 절은 웅장하고 일본의 절은 인공적이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있어요. 한국의 절은 자연 속에 묻힌 느낌이 강합니다. 우리에겐 이런 차이가 보이지 않아도 서양인들에게는 대단히 이색적이고 매혹적으로 비칩니다. 서양 문명권에는 없는 것이고 대단히 한국적인 느낌이 들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가 미국의 텍사스에 가면 역마차와 배지를 단 보안관을 상상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미국인들이 좋아하는 관광상품 중 하나가 DMZ(비무장지대)인 점도 한국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맥락과 일치하는 부분이다. 세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냉전의 산물이 관광상품화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미국인들은 대단히 흥미로운 관광체험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템플스테이 또한 미국인 관광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고요한 산사에 앉아 침묵 속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선(ZEN)’ 체험이 실용주의적인 미국인들에게 색다른 경험으로 다가간다.
 

외국인 관광객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야

우리나라는 관광자원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상품화하려는 노력이 미진하다는 것이 미국 관광업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얘기다. 오히려 미국인 관광객들은 관광자원의 문제가 아닌 외국인을 받아들이는 태도나 부족하기 이를 데 없는 관광 인프라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루디 아노우 부사장은 “한국의 호텔비가 대단히 비싸고 객실도 구하기 어려운 점은 향후 관광발전에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숙박시설 확충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숙박시설 확충 등의 문제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민간에 맡겨 놓으면 한계가 있다. 한국 정부가 관광 인프라 형성에 많은 지원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웨슬리 김씨는 “숙박 같은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되기 어렵지만 무엇보다 안내 표지판이 부족하고 상품을 강매한다든지, 언어문제로 불편을 겪는 등의 일은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인프라 형성에 시간이 드는 것은 차치하고 외국인 관광객 수용 태도부터 점검해야 재방문 유도는 물론 한국에 대한 관광 이미지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관광 인프라 여건이 아직 미흡한 것이 사실이지만 미국의 주요 여행업계는 한국을 대단히 매혹적인 관광국가로 인식하고 있다. 한국의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비즈니스 관광객이 늘고 있고, 미국에서도 인기 있는 이벤트인 ‘F1 그랑프리’ ‘평창올림픽’ 등 주요한 대회가 연차적으로 열리기 때문이다. 여기에 한류의 인기로 외국인 팬들의 방한이 이어지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한국을 한번 방문했던 미국인들이 한국의 전통문화에 매료돼 재방문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미국 항공사들이 적자로 항공좌석을 축소하는 상황에서도 오히려 한국 노선의 좌석은 늘리고 있다.

한·미 FTA 발효를 눈앞에 둔 2011년 한국의 관광산업은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이 변화된 환경을 기회로 관광대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관광대국의 경험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랜드캐년>

<출처 : FTA 세상 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