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침 등굣길, 지갑에는 만 원 두 장, 오천 원 한 장, 천 원 몇 장이 있었습니다. 하굣길 지하철에서 확인해 본 지갑에는 천 원 몇 장만이 남아있었습니다. 어디에, 어떻게 지출한 것인지도 모른 채 지갑에서 돈이 나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깜짝 놀랐는데요. 하루를 되돌아보며 ‘식비에 얼마, 우유 얼마… ‘ 라며 되뇌어 보았지만, 생각은 여기서 멈췄습니다.
정확히 어느 곳에 얼마를 지불했는지와 같은 구체적인 지출내역은 기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용카드 사용이 늘어나고, 교통비 지출마저 카드를 이용하면서 편리함은 얻었지만, 지각 없는 소비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몸소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부모님께 용돈을 받는 학생의 입장에서 잠시 죄책감이 들기도 했는데요. 함께 가던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하던 중, "지갑 없이 일정한 액수의 현금만 가지고 학교에 간다면 돈을 아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제가 어디에서 비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고, 어떤 소비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래서 예산을 10,000원으로 정해놓고, 평소 어떻게 소비를 하는지에 대해 사진으로 기록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전 재산' 만원, 어디에 어떻게 쓸까
도전 날짜는 3월 29일과 3월 31일, 10,000원으로 생활하기를 해보았는데요. 먼저 그 전 주말인 3월 26일(토요일)에 친구와 외출한 내용을 사진으로 기록해 '예산제약이 없는 상황에서의 소비내역'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3월 26일(토요일) 소비 내역입니다.
아기자기한 인테리어로 꾸며진 음식점에 도착해 메뉴를 보니, 가격은 10,000원대부터 70,000원대까지 다양했고, 음료는 고가의 와인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저희는 고심 끝에 비교적 저렴한 메뉴를 선택했는데요. 오랜만에 여유롭게,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어서 즐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합정역 주변의 솔내길을 걸으며 소화를 시켰는데요. 친구와 홍대에 있는 상상마당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는 와중에 상상마당이 바로 눈 앞에 보여 그 곳에 들어갔습니다. 토요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아주 북적거렸는데요. 다양한 아이디어 제품을 판매하던 그 곳에는 생각보다 가격대가 조금 있는 제품들이 많았습니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고 다시 합정역으로 향해 디저트 카페를 찾다가 예약을 미리 하지 않는 등의 실수로 그것을 포기하고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먹는 것에 약한 친구와 저는 기어코 특정한 맛의 팝콘을 파는 영화관을 가기 위해 신촌역으로 향했습니다. 그 곳에서 영화를 본 뒤, 합정역의 또 다른 맛집에 찾아갔지만 저녁시간이라 자리가 없어 학교 주변의 자주 가는 분식집에 가서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허기가 지는 바람에 이 저녁식사는 사진으로 기록하지 못해 아쉬움이 남는데요^^;
이 날의 소비를 항목별로 분류해본 결과,
식비 : (15,750 + 2,000 + 2,250) / 33,900 ≒ 0.59 ⇒ 1순위
유흥비 : 9,000 / 33,900 ≒ 0.27 ⇒ 2순위
교통비 : 4,900 / 33,900 ≒ 0.14 ⇒ 3순위
이며 식비 비중이 가장 큰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 통계청에서 산출한 가구당 소비지출비중 결과와 유사하게 식료품, 음식이 높은 비중을 차지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식사에 우선순위를 두는 저의 개인적인 소비 행태 역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간과 노력을 크게 들이지 않고 편리하게 소비생활을 했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예산 상의 제약이 크게 없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합리적인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3월 26일의 만족감을 10점 척도로 점수를 매긴다면, 7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은 곳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피로감 때문에 만족감이 조금 감소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이제 주중과 평일, 이틀 동안 '만원의 행복'을 시작했습니다.
3월 29일(화요일) 소비내역입니다.
보통, 학교에서 공강시간을 이용해 식사를 하는 경우에는 학생식당에 가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아래 메뉴에서처럼 항상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는 음식이 있음은 물론 매일 다양하게 한식 (2,100원), 일식(2,600원), 특선(2,900원)이 제공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날에는 학생식당을 이용하지 못했는데요. 당시 약 50분의 여유시간이 있는데 반해, 학생식당에 학생들이 줄을 길게 서 있어 학교 밖에서 점심을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이 때문에 계획보다 식비 지출이 증가했습니다. 다른 때 같았다면, 학교 주변에서 먹는 것에 대해 별다른 의식을 하지 않았겠지만, 이 날은 10,000원이라는 예산 제약 때문인지 점심식사 중에 약간의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는데요. 소비가 항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예상보다 식비에 과도하게 많은 지출을 했기 때문에, 자 이외의 필요한 필기류를 구입할 수 없었고, 기타 다른 소비를 할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이 날의 소비를 분류하여 비중을 살펴본 결과,
식비 : 5,500 / 9,800 ≒ 0.56 ⇒ 1순위
교통비 : 3,500 / 9,800 ≒ 0.36 ⇒ 2순위
소비재 구매 : 800 / 9,800 ≒ 0.08 ⇒ 3순위
역시 주말과 마찬가지로 식비 비중이 가장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산제약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합리적인 소비가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예산 외에 '시간'이라는 제약이 계획적인 소비를 저해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이 날의 전반적인 만족감을 10점 척도로 점수를 매긴다면, 6점이었습니다. 사실 점심식사 때 자주 가던 식당에서 이전에 먹지 않았던 새로운 메뉴를 먹어 만족감이 잠시 높았지만, 그 바람에 필요한 소비를 하지 못했고 집에 도착할 때까지 답답함을 느꼈던 것이 만족도의 점수가 낮은 이유였습니다.
3월 31일(목요일) 소비내역입니다.
지난 3월 29일에 생각보다 합리적인 소비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날, 의식적으로 조금 더 노력했던 것이 사실인데요. 불가피한 소비가 많았기 때문에, 아침에 학교에 도착하자 마자 필수적인 소비인 인쇄를 먼저 했습니다. 보통 흑백의 경우 한 장에 50원으로, 학교 내에서 쉽게 인쇄가 가능해 자주 이용하곤 합니다.
수업 전 쉬는 시간에는 친구를 만나 학교 내 카페에서 밀크티를 마셨습니다. 저렴하며 쿠폰제를 실시하고 있다는 장점 때문에 학교 카페를 자주 이용하는데요. 물가 때문인지 5월 1일부터는 쿠폰제를 실시하지 않는다는 공고가 붙어 있었습니다. 학교 내 카페를 자주 이용하는 학생으로서 쿠폰이라는 메리트가 없어져 안타까웠습니다.
수업이 끝난 후, 공강시간이 되어 이번에는 29일과 달리 사람이 많은 학생식당 대신에 교직원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점심식사를 제공하는데, 11시가 조금 안돼 도착해서 기다릴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한, 학기 초에 진행되는 T-money 이용 혜택이 있어 할인을 받아 합리적인 소비가 가능했습니다. 비록 학생식당보다 가격은 높지만, 적은 시간 내에 쉽게 이용할 수 있어 만족스러웠습니다.
이 날의 소비를 분류하여 비중을 살펴본 결과,
식비 : (3,600 + 1,500) / 10,050 ≒ 0.51 ⇒ 1순위
교통비 : 3,500 / 10,050 ≒ 0.35 ⇒ 2순위
소비재 구매 : 1,000 / 10,050 ≒ 0.1 ⇒ 3순위
기타비용 : 450 / 10,050 ≒ 0.04 ⇒ 4순위
여전히 식비 비중이 가장 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3월 29일과 달리 점심식사 때 T-money를 이용해 합리적으로 소비하였기 때문에 식비 비중이 조금 감소(0.56→0.51)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 결과 3월 29일에 예산 초과로 구입할 수 없었던 다른 필기류를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우선순위를 정해 소비한 것이 도움이 되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산에서 50원이 초과하는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계획에 없던 카페 이용으로 인해 생긴 문제로 생각됩니다.
이 날의 전반적인 만족감을 10점 척도로 점수를 매긴다면, 8점이었습니다. 의식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하여 소비를 함으로써 예산 내에서 합리적으로 지출한 것이 만족스러웠습니다.
이틀 간, 10,000원이라는 예산으로 학교에서 소비해 본 결과 무계획적으로 방치되는 소비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만족감은 예산제약 존재 유무가 아니라 소비행태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관점에 따라 많게, 또 적게도 보이는 10,000원이지만, 때로는 필요한 곳에 합리적으로 알찬 소비할 수 있으며 때로는 그 출처도 모르는 소비를 할 수 있다는 점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용돈이 부족할 때, 가끔 사용해 볼법한 좋은 방법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보다는 평소에 보다 계획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텐데요. 심각한 물가난 가운데 대학생으로서 학교에서 누릴 수 있는 저가격, 할인 등의 혜택을 잘 이용한다면 10점에 가까운 만족감을 만드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내일부터, 똑똑한 소비를 시작해 보는 것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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