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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블루칩 경제정책 이야기

국가 부채, '새로운 통계'를 기다리는 이유

작년 3분기 세계 3대 신용평가사들은 일제히 한국 신용등급을 상향 평가했습니다. 유로존 위기로 인한 세계적인 경기침체 속에서 한국만이 신용등급이 올라가는 쾌거를 이룬 것이죠. 신용등급 상승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세 회사 모두 한국의 재정안정성이 높은 것을 꼽았습니다. 한국의 국가부채는 GDP 대비 30%대로 OECD 가입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 그만큼 재정안정성이 높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이 평가에 대해 반대의견을 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한국 국가부채 산정기준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국가부채 통계가 잘못되었다는 것인데, 어째서 이런 논란이 일어나는 걸까요?

 

국가부채 통계란?


국가부채 통계는 한 국가의 정부가 지닌 부채를 정리해서 보여주는 수치를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국가가 발행한 채권이나 정부 차관 등이 포함되는데, 단순히 액수만 보여주면 국가부채가 많은지 적은지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수치를 가지고 가공을 하게 되는데, 일반적으로 국가부채 통계에서 사용하는 것은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율입니다. 한 나라가 벌어들이는 수입에서 얼마나 부채를 갚을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죠.

 

 

 

 

국가부채는 정부 재정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됩니다. 재정건전성은 정부가 세입과 세출 관리를 잘하고 있느냐, 현재 가지고 있는 부채를 잘 갚을 수 있느냐 등을 나타내는데요.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낮다면 정부가 부채를 갚을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 경기불황시 정부가 적자재정을 펼쳐야 할 경우에도 정부가 적자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국가부채 통계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요? 우선 정부가 추가적으로 국채를 발행해야 할 때 국채 금리를 낮게 발행하거나 더 많은 액수를 발행할 수 있어 국채발행을 좋은 조건에서 할 수 있습니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때 기존 대출이 많은 사람보다 적은 사람이 낮은 금리로, 또는 더 높은 액수로 대출을 받을 수 있고, 또 소득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보다 대출을 유리한 조건에서 받을 수 있죠?

 

정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낮다는 것은 정부가 가진 부채가 적거나 세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좋은 조건에서 국채를 발행할 수가 있죠.

 

또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하는 데에도 국가부채 통계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경기불황이 발생하면 정부는 적자재정을 펼쳐 경기회복을 꾀하게 되는데 적자를 메꾸기 위해 국채를 발행하게 됩니다. 경기불황인 상황에서 국채를 추가적으로 발행하게 되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올라가게 되죠. 즉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해당 국가 경제가 안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안전하게 원금과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국가에 투자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국가부채 통계를 근거로 외국인 투자자를 유치할 수 있는 것이죠.

 

공기업부채가 국가부채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이렇게 중요한 국가부채 통계를 두고 말이 많습니다. 국가부채 통계에 들어가는 부채 항목이 잘못되어서 실제 부채보다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것인데요. 어떤 부채가 들어가고 어떤 부채가 안 들어가는 것일까요?

 

현재 국가부채 통계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만 진 빚만 포함이 됩니다. 공기업이 발행하는 공사채나 특수채, 연금공단이 연금지급을 위해 쌓고 있는 기금(회계장부상 부채),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통화안정증권 등은 국가부채 통계에 포함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현행 국가부채 통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 부채는 정부가 2차적으로 책임을 져야 하는 부채인데 왜 국가부채에 포함시키지 않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기획재정부는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이들 부채를 국가부채 산정에서 제외해 왔습니다. 우선 이들 부채는 정부활동과 구분되는 활동에서 발생하는 부채라는 점입니다.

 

공기업부채는 공기업이 자체적으로 경영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채고, 통화안정증권은 정부와 독립된 기관인 한국은행이 통화량 조절을 목적으로 발행하는 채권입니다. 정부활동을 하기 위해 발행하는 국채와는 성격이 다르죠. 또 국제기구인 IMF나 세계은행, OECD 등에서 제시하는 국가부채 산정 기준에서도 위와 같은 이유로 공기업부채 등을 국가부채 산정시 제외했습니다. 기획재정부가 발표하는 국가부채 통계는 이 기준에 따라 공공기관부채를 제외해서 계산했고, 신용평가사들도 이러한 기준에 대해 별다른 지적을 하지 않았습니다.

 

공기업부채, 증가폭이 빠르다(?)


그런데 이들 부채, 그중에서도 공기업부채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2년 한해 중앙 공기업이 발행한 채권 발행액은 무려 105조 7840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습니다. 2011년보다 47.5% 증가한 수치고, 채권 발행액이 100조를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점점 공기업 채권 발행 규모가 커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만 가장 큰 이유는 경기불황으로 들어오는 돈은 줄어드는데 나가는 돈은 늘어났다는 점입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전력공사, 한국도로공사 등 우리나라 중앙 공기업은 도로, 수도, 전력, 철도,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회간접자본의 특징은 사업 초기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 지속적으로 고정적인 지출이 방생한다는 점이죠.

 

최근 몇 년간 원자재 가격 상승 등 물가 상승으로 인해 투입되는 비용은 늘어났습니다만, 물가를 억제하려는 정부 정책 때문에 오랫동안 공기업들은 서비스비용을 동결시키거나 인상폭을 최소한으로 설정해 적자가 누적되었습니다. 공기업이 적자가 지속되면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거나 외부에서 자금을 모아야 하는데, 정부 보조금만으로는 한계가 있어 채권발행을 늘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예금보험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등 금융공기업 채권발행이 크게 증가했다는 것입니다. 두 회사 모두 20조원이 넘는 규모의 채권을 발행했는데요. 예금보험공사는 경기불황으로 인해 여러 저축은행들이 부실해지자 부실저축은행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금을 차입했습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는 주택연금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하우스 푸어 대책으로 적격대출을 출시하면서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있어 채권을 발행했습니다. 결국 이들 공기업 역시 경기불황을 이유로 채권을 발행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공기업부채 증가가 문제 되는 이유?

부채가 증가하더라도 그 부채를 잘 갚을 수 있으면 문제는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대로 공기업들이 이익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부채가 증가하고 있기에 이런 추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공기업부채가 늘어날수록 정부 재정에 부담이 된다는 것인데, 정부는 공기업 지분의 대다수를 보유하고 있어 공기업에 문제가 생기면 결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직 공기업이 보유한 자산이 부채보다 많아 큰 문제는 없습니다만 공기업이 보유한 자산은 쉽게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이 많아 위기가 발생하면 국가재정이 투입되고, 결과적으로 국가부채가 늘어나게 됩니다.

 

구체적인 액수를 보면서 이야기해볼까요?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알리오, 2011년 기준))에 따르면 시장형, 준시장형 공기업 부채총계는 360조 원에 달하고, 기타 공공기관을 합하면 463조 원이나 됩니다. 2012년 한국 국가부채가 468조 원이니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국채규모가 두 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앞서 본 국가부채 통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통계에 잡히지는 않지만 사실상 정부가 진 부채가 상당히 많고, 규모도 크기 때문에 현재 통계로는 정부의 재정건전성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것이죠. 이렇게 통계와 실제수치 사이에 괴리가 심해지면 재정을 관리하는 정부 입장에서도 혼란이 생기고, 한국에 투자하려는 외국인들도 혼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새로운 통계에 관한 관심

 이런 논란은 해외에서도 일어나는 것인지 영국, 캐나다처럼 공기업부채를 국가부채와 합산하는 국가들도 있습니다. 반면 미국은 국가부채만 계산하는데요. 좀 더 명확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2012년 6월 IMF, 세계은행, OECD 등 경제 관련 세계기구들이 연합해 「공공부문 채무 작성지침」을 만들었습니다. 이 지침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부채는 물론 공기업을 포함한 공공기관 부채를 한꺼번에 계산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에서도 이에 맞춰 지난 2월 공기업부채를 포함한 새로운 통계를 도입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냈습니다. 해당 보도자료에 따르면 새로운 부채 통계는 2014년 3월 발표할 계획인데요. 이를 통해 국가부채와 공기업부채를 포함한 공공부문 부채를 합쳐 잠재적인 위협을 알아내고 이를 통해 효율적인 부채관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새로운 통계가 나오기까지 겪어야 할 진통도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법적인 이유로 합산하지 못하는 공공기관에 대한 문제 등입니다. 

 
새로운 통계 도입은 간단해보이면서도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많은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일입니다. 새로운 통계가 기존 통계에 대한 불만을 잠재우고, 공기업부채를 관리할 좋은 도구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