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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경제이야기/스마트한 경제 이야기

인간은 '합리적인 사람'일까, '합리화하는 사람'일까?

일반커피 VS 고급커피. 동일한 가격이라면, 당신의 선택은?

                                                일반커피 vs 고급커피 ⓒLSY


단연 고급커피!
그런데 과연 자판기의 일반커피와 고급커피가 맛과 풍미에서 얼마나 차이 날까요? 고급커피를 선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그저 ‘고급이니까 더 맛있겠지?’ 라는 막연한 이유로 커피를 골랐을 터.
허나 실질적으로 일반커피와 고급커피의 원료 차이는 미미하다고 합니다. 경제학에서는 분명히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고 했는데, 실생활에서 우리는 그다지 합리적이지 못한 행동을 보이고 있군요.

앞선 사례와 비슷한 상황은 주변에서 많이 찾을 수 있습니다. 동일한 제품이어도 마케팅 전략이나 혹은 당일 소비자의 기분, 경험 정도에 따라 다른 선호도를 보이곤 하는 것입니다.

Q. 그렇다면 이 같은 상황을 경제학적으로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A. 정답은 '휴리스틱(Heuristic)'!

‘고급커피가 왠지 더 좋은 원료를 쓰고 맛이 좋을 것 같기 때문’, ‘오늘은 왠지~’, ‘경험상 ~이거야!’ 하는 행동방식을 경제학 관련 용어로 '휴리스틱'이라고 합니다. 

휴리스틱은 그리스어 'Heutiskein'이 어원이며 발견하다(To discover) 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이미 정립된 공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보가 완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노력을 더하고 시행착오를 거쳐서, 또는 경험을 통해서 주먹구구식의 규칙을 얻게되고 지식을 알게 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행동경제학 혹은 행태경제학은 경제학이라고 분류하기에 대중에게는 다소 생소한 영역인 게 사실입니다. 심리학의 통찰력을 경제 현상, 특히 인간의 경제 행태에 대한 연구에 적용한 것으로 최근 들어 각광 받고 있는 새로운 경제학 분야이기 때문이죠.

이준구 서울대 교수는 최근 그의 저서 <36.5℃ 인간의 경제학>에서 "인간은 호모 이코노미쿠스(합리적 인간)가 아니다"라고 주장합니다. 즉 언제나 ‘최선’의 선택이 아니라 단지 ‘충분히 좋은' 선택이 이루어진다는 것, 이른바 '만족 원칙(satisfaction principal)'에 근거한 선택을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개념은 '제한적인 합리성(bounded rationality)'으로, 이는 "인간은 합리적인 동물"이라는 가정을 전제로 하는 주류 경제학사의 근간을 뒤흔드는 개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누구나 한번쯤은 해봤을 ‘좋은 게 좋다’라는 행동 방식! 이외에도 우리는 행태경제학적 시선으로 봤을 때 휴리스틱한 의사결정을 종종 내리곤 합니다. 그럼 우리의 실생활 속으로 들어가 일상 속의 휴리스틱을 되짚어봅시다!

                               대표성 휴리스틱, 가용성 휴리스틱? 행동경제학! ⓒLSY          



승용차, 버스, 기차, 비행기 중에 가장 안전한 교통수단은 무엇일까?
우리 아파트 단지에는 남성과 여성 중 어느 쪽이 더 많이 거주할까?

우리는 종종 이 같은 궁금증을 갖곤 합니다. ‘승용차 교통사고가 더 많지 않나?’, ‘아냐! 비행기 추락이면 사상자가 대체 몇 명인데! 어마어마하다고.’ 벌써 이런 고민을 하고 계시겠죠?^^

한국 교통안전 진흥 공단의 자료에 의하면, 1억 마일 주행 당 승객 사망자 수는 승용차가 16.16명 비행기가 0.08명으로 비행기가 현저하게 낮습니다. 허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행기가 더 위험한 운송수단이라고 예상한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비행기 사고 관련 영화를 너무 많이 접했고, 국내 사건 사고에서도 비행기 사고를 더 심각하게 보도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질문은 어떨까요? 주로 낮 시간에 활동하는 가정주부의 입장에서는 여성들이 많다고 느낄 것입니다. 이는 본인의 기억을 더듬어 보아 아파트 단지 내에서 마주쳤던 여성과 남성의 수를 비교하는 데서 나오는 착각에서 기인합니다. 이처럼 개개인이 사용 가능한 데이터나 기억의 바다에서 가장 빨리 건져 올릴 수 있으며, 보다 생생하고 도드라진 정보를 활용해 판단을 내리는 경우를 '가용성 휴리스틱' 이라고 합니다.

휴리스틱과 관련된 또 다른 궁금증 하나!

'뜨거운 자장면 원조 논쟁 그 끝은?’(SBS스페셜, 2009. 5.19), ‘영국이 먼저냐 프랑스가 먼저냐… 샴페인 원조 논쟁’(한국경제 2009. 4.10), ‘지상파 DMB폰 LG, 삼성 원조 논쟁’(세계일보 2005. 2.17)' 등 원조 논쟁은 분야를 가리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왜 이렇게 원조에 집착할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원조’라는 것이 개인이나 기업에 대표성을 부여할 뿐만 아니라 소비자에게 오래 기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원조에 집착하는 음식점, 너도 나도 원조? ⓒLSY


기업들이 주력 상품을 계속적으로 개발하는 것 또한 후광효과를 누리기 위한 전략이라 할 수 있습니다. 후광효과는 대표성 휴리스틱의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대표성 휴리스틱 이란 어떤 집합에 속하는 A가 그 집합의 특성을 그대로 나타낸다는 뜻에서 집합을 대표한다고 간주해 빈도와 확률을 판단하는 방법을 의미합니다. 즉, 원조라는 타이틀을 얻어 맛 집을 대표하는 특성을 보일 것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앞서 알아보았듯, 휴리스틱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가까운 곳에 숨어있습니다. 우리는 끊임없는 선택의 기로에서 일일이 계산기를 두드리고 최대한 합리적인 방법을 찾진 않았네요~ 하긴, 슈퍼마켓에서 작은 물건을 살 때마다, 무슨 음식점에 들어갈지 선택할 때마다 경제 교과서를 뒤져야만 한다고 생각해보세요. 끔찍하군요.

2012년 1월 1일, 새로운 다이어리에 올 해의 굳은 결심을 빼곡히 적으며 결심합니다. ‘올 여름에는 꼭 비키니 입어야지!’ 여성이라면, 뚱뚱하지 않더라도 한 번쯤 해보는 새 해 목표. 허나, 다이어트를 그저 열심히 하리라고 마음먹었다면 당신은 아마 본인의 나약함에 혀를 내두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합리적인 인간이 아닌, ‘합리화하는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 해야지’
‘헬스클럽을 끊었으니까 돈 아까워서라도 꼭 운동해야지’

그러다 여름은 옵니다. 비키니 수영복은 커녕 늘어난 뱃살에 눈물을 머금은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내 이럴 줄 알았어.’ 사람들은 흔히 어떤 일의 결과를 보고 나서 실은 자기가 진작 그런 결과를 확실히 예견하고 있었다고 믿곤 합니다. 이른바 사후확신편향 입니다. 이 역시 행태경제학의 개념 중 하나입니다. 헌데, 어디서 많이 들어보았다고요? 영국의 유명한 극 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에서 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가 행태경제학을 알았던 걸까요? 그는 그저 합리화하는 인간이었을 뿐입니다.

앞서 우리는 행태경제학과 그 대표적인 개념들을 짚어 보았습니다. 필시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움직이셨겠지요. 우수한 경제학자일지라도, 용한 점술가 일지라도 우리는 직함을 갖기 이전에 스스로 '합리화하는 인간'임을 명심합시다. 혹, 주먹구구식의 결정을 내리어도 우리는 말할 것입니다. ‘십중팔구 이게 분명해, 십 중에 팔 구 이면 과반수 이상 이잖아.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