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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마블 문헌보관소/2010 서울 G20 정상회의

미리 가 본 ‘서울 G20’ ④ 시스템 리스크 규제

"금융시스템 리스크 규제가 주요 의제라는데 …"
"나무 한 그루보다 숲 전체를 건강하게 하자는 거죠"


'하이파이(hi-fi)'는 원음에 가깝게 소리를 재생하는 장치나 사운드 자체를 일컫는 말이지요. 그런데 주요 20개국(G20) 회의에서 흔히 '사이파이(SIFI)'라고 불리는 용어는 대체 무슨 뜻일까요. 또 '볼커룰'이란 건 무엇일까요. 알 듯 모를 듯한 이런 말들을 논의하는 G20 의제인 '시스템 리스크 규제'를 G20 홍보대사인 배우 한효주가 질문하고 자본시장연구원 박사가 설명하는 형식을 빌려 쉽게 풀어봤습니다. 이번 회는 신보성 자본시장연구원 금융투자산업실장(경영학 박사)이 답변합니다.

효주:G20 서울회의의 중요한 의제 중 하나가 '시스템 리스크 규제'라고 하죠. 시스템과 리스크, 각각의 뜻은 알겠는데 시스템 리스크라고 하니까 좀 생소하네요.

박사:그럼 비유를 들어 설명해 볼게요. 금융회사를 나무, 전체 금융시스템을 숲이라고 해봅시다. 금융위기 전까지는 각국의 금융감독기관들은 나무 하나하나가 얼마나 건강한지만 따져봤습니다. 다시 말해 개별 금융회사의 리스크(위험)에 대한 규제만 신경 썼죠. 금융위기가 닥치기 직전까지도 이 나무들엔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어느 날 숲 전체가 갑자기 망가진 겁니다. 미국 사람들이 집 살 때 받은 대출을 갚지 못하게 되는 상황(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부실화)이 되면서 전체 금융시스템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입니다. 그러자 숲 속의 나무들도 마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처럼 집단적으로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대형 금융회사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게 대표적이죠.

이렇게 금융위기를 경험하면서 각국 정부는 깨달았습니다. '아, 일단 숲이 무너지면 나무가 쓰러지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구나'라고요. 그래서 나무 대신 숲, 즉 전체 금융시스템의 리스크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됐습니다. 개별 금융회사 하나하나에 초점을 맞춰서 감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이제 전체 금융시스템을 관리하는 큰 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인 것입니다.


효주:나무 대신 숲, 개별 금융회사 대신 전체 시스템을 관리하는 규제를 만들자는 것이로군요. 그럼 규제 방법도 이미 찾았나요?

박사:시스템 리스크 규제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이번 G20 서울회의에선 대형 금융회사들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이 주로 논의될 겁니다. 사실 금융시스템이라는 큰 틀 안엔 수많은 금융회사가 있지만, 금융회사라고 다 같은 건 아닙니다. 유독 금융시스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큰 금융회사가 있고, 그럴수록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중요한 금융회사들에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ystemically important financial institutions)'. 보통 SIFI로 줄여 읽습니다. 이 SIFI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게 이번 G20 회의의 주요 의제랍니다.

효주: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라. 저도 그냥 SIFI라고 불러야겠군요. 어떤 금융회사들이 SIFI에 속하나요.

박사:SIFI냐 아니냐를 가리는 기준은 지금 만들고 있는 중입니다. 그 기준 중 하나가 금융회사의 크기입니다. 규모가 큰 금융회사는 전체 금융시스템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대형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훼손되면, 곧 전체 금융시스템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또 대형 금융회사는 시장을 이끌어 갑니다. 금융계의 리더라고나 할까요. 일단 대형 금융회사가 어떤 업무를 하기 시작하면, 나머지 중소형 금융회사들도 이를 따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한쪽으로만 우르르 몰리는 '쏠림현상'도 나타나고요. 이런 것도 금융시스템 전체의 건전성을 해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도 금융회사의 크기는 SIFI를 선정할 때 매우 중요한 요인입니다.

또 크기가 같은 금융회사가 시스템 안에서의 중요도도 똑같으냐 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같은 규모라도 다른 금융회사와 수많은 거래로 얽혀 있는 곳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곳도 있지요. 이를 다른 금융회사와의 '연계성'이라고 합니다. 연계성에 따라서도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달라집니다. 거래관계가 복잡할수록, 다른 금융회사로부터 빌린 돈이 많을수록, 금융회사가 파산했을 때 그 여파가 전체 시스템으로까지 번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따라서 크기뿐 아니라 상호 연계성도 SIFI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겁니다.

효주:크기가 크고 거래관계가 복잡한 금융회사가 SIFI라고 할 수 있겠군요. 그럼 SIFI를 어떻게 규제할지 방법은 정해졌나요.

박사:금융안정위원회(FSB)가 중심이 돼 SIFI를 어떻게 규제할지를 연구해 왔습니다. 다른 금융회사보다 자본 규제를 추가로 부과하는 방안을 현재 논의 중입니다. FSB가 제6차 연차총회를 20일 서울에서 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나온 SIFI 규제의 큰 그림을 가지고, 다음 달 열리는 G20 서울회의에서 각국이 합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답니다.

효주:서울회의에서 합의를 앞두고 있다니, 저도 기대되는걸요. 하지만 여러 국가들 간 의견이 쉽게 모아질 수 있을까요.

박사:사실 SIFI 규제방안 중에도 나라 간 의견이 갈리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볼커룰(Volker rule)'이 그렇습니다. 폴 볼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의장의 주장이 많이 반영된 규제라서 '볼커룰'이라고 부릅니다. 한마디로 은행업과 증권업을 분리하는 내용입니다. 은행이나 은행이 포함된 금융그룹은 증권이나 금융상품을 사고파는 행위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거죠.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7월 서명한 미국 금융개혁법에도 이러한 볼커룰이 반영돼 있습니다.

효주:은행업과 증권업, 둘을 왜 분리하려고 할까요. G20 서울회의에서 볼커룰도 논의되는 건지 궁금하네요.

박사:은행은 증권사나 보험사보다도 금융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이 큽니다. 그만큼 중요하니까 은행을 지키려고 하는 거죠. 위험도가 큰 증권업무는 은행이 아예 다루지도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하려는 겁니다. 싫든 좋든 은행업과 증권업 간의 담쌓기 문제는 당분간 국제적으로 논의될 거예요. 미국이 일단 볼커룰을 법제화했으니, 다른 나라들에도 비슷한 규제를 채택하라고 압박할 게 뻔하거든요.

하지만 오래전부터 은행들이 증권업을 해온 유럽에서는 반발기류가 꽤 강합니다. 은행과 증권을 분리하면 유럽 금융회사의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직까지 볼커룰에 대해서는 공감대가 이뤄지진 못했습니다.

아마 이번 G20 서울회의에서 볼커룰은 SIFI 규제의 일부분으로 논의될 겁니다. 다시 말해 미국처럼 중소형 은행까지 포함한 모든 은행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대규모 은행에만 증권업을 제한하는 문제가 논의될 예정입니다. 물론 국가별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논의가 깊게 이뤄지진 못할 가능성이 더 크긴 하답니다.

김용범 G20 금융시스템개혁국장 “글로벌 영향력 큰 금융사 규제 청사진 내놓을 것”

“이번 서울 정상회의에선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회사(SIFI) 규제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하게 될 겁니다.”

G20 정상회의준비위원회 김용범(48·사진) 국제금융시스템개혁국장의 말이다. 2009년 4월 G20 런던회의 때부터 논의가 이어진 SIFI 규제방안의 윤곽이 이번 서울회의에서 어느 정도 드러난다는 것이다. SIFI 규제에 대한 논의는 글로벌 SIFI와 내셔널 SIFI, 두 가지로 나눠 진행될 전망이다.

“글로벌 금융시스템에 영향력이 큰 금융회사는 '글로벌 SIFI'로 지정해 더 강화된 규제·감독을 하게 될 겁니다. 대신 내셔널 SIFI에 대해서는 각국이 상황에 맞게 규제·감독하게 하자는 데 의견이 모이고 있습니다.”

아직 규모 면에서 글로벌 금융회사에 못 미치는 국내 금융회사들은 내셔널 SIFI로 분류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SIFI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게 국내 금융회사로서는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 국장은 “금융위원회 등 정책당국이 SIFI 규제가 국내 금융회사에 끼칠 영향을 면밀히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서울회의에서 논의될 시스템 리스크 규제방안이 SIFI 규제에만 그치는 건 아니다. 의장국인 한국이 새로운 이슈를 제기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거시건전성 정책체계'를 구축하는 문제가 그것이다.

김 국장은 “그동안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원인을 해결하는 데 집중하느라 SIFI 규제가 논의의 중심이 됐던 것”이라며 “SIFI 규제가 마무리 단계에 온 만큼 의장국인 한국이 새로운 이슈를 제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거시건전성 정책체계 구축 문제를 22일 열리는 경주 재무장관 회의에서부터 제기할 예정이다.

거시건전성 정책체계의 예로 김 국장은 총부채상환비율(DTI)과 담보인정비율(LTV)을 들었다. 둘 다 가계의 주택담보대출을 적정 수준으로 제한해 집값 하락이 금융시스템에 미칠 수 있는 충격을 줄여 주는 정책수단이다. 그는 “이번 서울회의에서 거시건전성 정책체계 논의가 필요하다는 데 각국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금융안정위원회(FSB)나 국제통화기금(IMF)이 이를 의제로 다루게 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행정고시 30회인 김 국장은 재정경제부와 금융위원회에서 은행·증권·보험 등 국내 금융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2000년부터 5년간은 세계은행 시니어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하면서 신흥개도국의 금융발전 전략을 조언했다.

자료 협조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