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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기관 수기공모전 시간선택제 부문 최우수상, 이◯◯ / 한국철도공사 -



는 한국철도공사에 근무하는 43살 직장인입니다. 지금은 누구나 꿈꾸는 공기업에 다니고 있지만, 결혼 전까지만 해도 경제적으로나 신분이 불안정한 중소기업에 다닌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던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저와의 결혼을 결심한 사랑스런 아내, 초등학교 5학년과 2학년의 두 딸을 둔 평범한 가장이기도 합니다. 그렇게도 화목한 저희 가정에 2012년 3월 2일,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둘째 딸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내는 갑자기 턱과 가슴에 통증을 호소하였고, 퇴근을 한 시간 정도 남기고 영문도 모르는 저에게 장모님의 전화 한 통이 걸려왔습니다. 전남 여수에 소재한 집 근처 종합병원에 아내가 입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다음날 종합검진을 받는 내내 초조하게 떨고 있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아무 일 없을 거야.”라는 위로의 말뿐 달리 해줄 게 없었습니다. 종합검진을 마친 후 의사선생님께서 부르시더니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시면서 아무런 처방 없이 큰 병원에 가보라는 말씀을 하셔서 저희 부부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웠습니다. 퇴원 수속을 밟고 집으로 돌아온 저와 아내는 내내 침묵으로 서울 큰 병원으로 가서 지낼 옷과 물품을 챙기면서 아이들이 하교할 때를 기다렸습니다.

갑작스러운 아내의 암 진단, 그리고 투병 입학한 지 얼마 안된 철없는 둘째 아이는 엄마가 퇴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쁜지 엄마에게 학교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속 깊은 첫째 아이가 오자 엄마가 많이 아프다는 사실과 서울에 있는 큰 병원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말했습니다. 큰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지자 온 가족이 부둥켜 안으며 참고 있었던 눈물을 한없이 흘렸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마친 후 의사선생님께서‘림프종’이라는 생소한 병명을 말씀하시면서 혈액암의 일종이니 바로 항암치료에 들어가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롭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은 사실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바로 항암제가 투여되었고 그렇게 아내가 호소하던 턱과 가슴의 통증은 서서히 가라앉게 되었습니다. 그제서야 저는‘의사 선생님께서 오진하신 것이 아니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초등학생 두 딸을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저는 집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장모님은 아내의 간호를 위해 서울 병원생활을 하시고, 어머님은 우리 집안일을 위해 시골집에서 나오시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빈 자리는 실로 크다는 걸 느꼈습니다. 할머니의 사랑보다 엄마의 사랑이 더 나았는지, 건강했던 둘째 아이가 자주 배가 아프다는 얘기를 해서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최근에 아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적이 있어요?” 라고 질문해 속상한 적도 있었고, 착실했던 큰아이도 짜증을 자주 부려서 혼을 낸 적도 있었습니다. 7개월 동안 6번의 항암 약물치료와 10번의 방사선치료가 거의 완료될 쯤의 일이었습니다. 그토록 딸을 위해 지극정성으로 돌봐 주신 장모님께서 기력이 쇠하여 쓰러지신 것입니다. 위암으로 돌아가신 장인어른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딸의 병간호를 또 다시 하다 보니 마음의 병과 병원생활의 힘든 과정을 몸이 먼저 알아챈 것입니다. 장모님은 여수로 내려오시게 되었고 제가 아내의 병간호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휴직을 하려고 하였으나 소득활동을 하지 못하면 생계며 병원비며 감당하기가 힘들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쉽게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휴직 대신 선택한 단시간 근로제평소 유연근무제는 내 일이 아닌 육아 때문에 직장생활을 하기 힘든 여성들이 활용하는 줄만 알고 관심이 없었는데, 소속장님에게 유연근무제도에 대한 얘기를 자세히 듣고 꼭 저에게 맞는 제도라 생각하여 고민할 필요도 없이 단시간 근로제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직장생활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근무를 하게 되었고, 근무형태는 3조 2교대에서 일근으로 바뀌었으며, 주로 소속 직원의 기술력 향상을 위해 교육자료 및 매뉴얼 정비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집안 걱정을 하면서 현장근무를 하다 보니 자칫 위험에 빠질 수 있었던 상황도 있었는데, 유연근무제를 하면서부터는 사무실에서 안전하게 업무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1일 4시간 근무인 만큼 좀 더 구체적으로 업무계획을 세워 다른 직원의 업무에 지장이 없도록 모든 일을 사전에 예측하여 추진하게 되었으며, 직원들의 관심과 배려 덕분에 마음 편히 유연근무를 할 수 있어서 더욱 더 저의 업무를 게을리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 가족에게도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퇴근 이후에는 집안일을 하고 아이들의 숙제나 학교생활에 필요한 준비물을 챙겨주면서 아내를 보살피다 보니 아이들도 명랑하게 생활하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아내의 병까지 호전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힘든 과정은 있었지만 유연근무제를 통해 큰 경제적인 부담없이 가족의 행복을 되찾을 수 있어서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느꼈습니다. 끝으로 우리 기관처럼 동일한 직종이 전국에 산재되어 있는 조직을 가지고 있는 사업장은 자칭‘공간근무제’라 하여 일정 기간 타 지역에 근무할 수 있는 제도가 추가로 마련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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