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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경제

엥겔계수가 왜 11년 만에 가장 높아졌을까요?

가계의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엥겔계수’라고 합니다. 그동안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경제용어였지만 요즘 새롭게 눈길을 끌고 있죠. 이 계수가 11년 만에 최고치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엥겔계수가 높아진 것은 가계 형편이 나빠졌다는 뜻이죠. 식료품값이 크게 오른 탓도 있지만 경기 불황 영향도 큽니다. 소득은 늘지 않고 먹을거리 지출은 늘어 삶의 질이 팍팍해진 거죠. 다른 소비는 줄일 수 있어도 식료품비만큼은 줄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엥겔계수는 1850년대 후반 독일 통계학자이자 경제학자인 에른스트 엥겔이 만든 개념입니다. 그는 소득이 적은 가계로 갈수록 식료품 지출 비중이 높고 소득이 많은 가계로 갈수록 그 비중이 낮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소득이 변하더라도 식료품비 지출은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이란 거죠. 이런 주장은 식료품이 필수재이기 때문에 소득이 줄었다고 소비를 크게 줄일 수도 없고 소득이 늘었다고 소비도 크게 늘릴 수도 없다는 사실에 착안한 것입니다. 엥겔계수 변화를 살피면 생활수준 변화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엥겔계수는 13.6%나 됐습니다. 1천 원을 벌었다면 136원을 식료품 사는 데 썼다는 뜻이죠. 2000년 하반기에 14.0%를 기록한 이후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엥겔계수는 1970~80년대에 30∼40%를 넘나들다 1990년대에 들어서 20% 아래로 떨어졌죠. 이후 감소세를 이어 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2008년부터 오름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정부 통계를 보면 상반기 가계 명목소득 지출은 323조9천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7% 늘었습니다. 같은 기간 식료품비 지출은 6.3%나 늘었죠. 이번 엥겔계수 상승에는 몇 가지 재미있지만 쓸쓸한 현상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술과 담뱃값 지출 영향이 적어진 거죠. 예전에는 술과 담배가 엥겔계수 상승에 주된 요인이었지만 이번에는 1970년 이래 영향이 가장 적었습니다. 의류·신발 지출도 2007년 후반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가계지출 중 순수 식료품비 비중이 높아져 다른 데 쓸 여유가 없었다는 얘기입니다. 엥겔계수 변화의 주요 원인은 바로 경기 침체와 식료품 가격 상승입니다. 밀·콩 등 작황 부진으로 국제 곡물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국내 식료품 물가가 가파르게 뛰었죠.

 

다른 나라를 살펴보면 지난해 일본의 엥겔계수는 23.7%로 선진국 가운데 이례적으로 높았습니다. 미국 7.2%, 독일 6.9%, 영국 11.4% 등 거의 모든 선진국은 10% 안팎에 머뭅니다.

 

엥겔계수를 낮추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문가들은 서민생활의 주름살을 펴주려면 물가 안정과 일자리 창출에 우선순위를 두고 정책을 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좋은 대책으로 일자리 창출을 꼽습니다. 엥겔계수의 상승곡선을 내리막으로 되돌릴 수 있는 확실한 처방도 일자리 창출로 봅니다.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돌파하고 무역 규모가 1조 달러를 넘는 나라에서 높아진 엥겔계수를 걱정하는 것은 씁쓸한 일입니다.